정성태 [기타]

한강 노벨문학상, 김주혜 톨스토이 문학상 소식을 접하며

시와 칼럼 2024. 10. 14. 22:31
728x90

시골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끝나가는 무렵 광주로 전학했다. 외삼촌들 공부 때문에 외갓집이 광주로 이사하며 나도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됐다.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었으나, 명문을 다녀야 한다는 선친 뜻에 따라 횡단보도를 여러번 건너야 있는 학교에 다녔다. 외갓댁에 오니 삼촌들이 읽었을 듯한 소설들이 보였다. 그걸 닥치는대로 읽었다. '삼국지'도 이때 처음 접했다.

1년 후,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2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숙부 근무지가 광주로 바뀌며 생활 공간을 그리로 옮겼다. 1년만에 학교 환경을 비롯해 친구들까지 모두 바뀌게 되니, 적응하기 위한 심적 부담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우울하게 초등학교를 마쳤다. 이후 중학생이 되면서 지금까지 읽은 소설의 9할 가량을 그때 모두 읽은 듯싶다.

당시에는 응접실 벽면을 책으로 가득 장식하는 것이 무슨 유행인 듯했던 시절이었다. 숙부댁에도 셰익스피어 전집을 비롯해 많은 책이 전시품마냥 있었다. 그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삼국지도 세권으로 된 것을 다시 읽었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중학교 입학해서 공부를 어렵게 여기지는 않았다. 특히 수학이 쉬웠다. 수업을 잘 듣고, 원리만 이해하면 되었다. 의외로 국어, 영어, 국사가 까다로웠다. 외워야 하는게 많아서였다. 처음 치른 시험에서 국영수 가운데 수학만 한 문제 틀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너무 급하게 풀다가 실수한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학교에서 가장 싸움 잘하던 녀석, 돈을 펑펑 쓰던 녀석과 삼총사로 어울렸다. 학교 공부는 더욱 먼나라로 되어 갔다.

그러던 10대 후반 무렵인 듯싶다. 친구집에 갔는데 소설 '자기 앞의 생'이 눈에 띄였다. 책을 빌려와서 단숨에 읽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이후 읽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장미, 나의 쪽배'가 기억에 남아 있다. 굵은 눈물로 책장을 적시며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국내 작가들이 들으면 서운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 읽은 국내 소설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집을 10대 때 읽은 것과, 중년 들어 접한 몇권이 전부다.

고교 때부터는 시와 산문을 종종 읽었다. 사실 친구들과 쏴다니기 바빴다. 그렇지만 숙부댁으로 매달 우송되던 월간 시사잡지 '신동아'는 손꼽아 기다리며 읽기도 했다. 뭔가 폼나는 듯싶어 외출할 때는 팔짱에 끼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대학생 여인들을 만나면 절대 고교생이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다른 애들보다 머리칼을 길게 유지하기 위해 학교측과 신경전도 불사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과 김주혜 작가의 러시아 톨스토이 문학상 소식이 연이어 타전된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소설문학이 세계적 반열에 오른 듯싶다. 특히 한강 작가는 광주 5.18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고, 김주혜 작가는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고무된다. 국민된 입장에서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