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기타]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 자료관 둘러보기

시와 칼럼 2024. 9. 7.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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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 1886년 5월 25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이자, 중도진보 성향의 정치인이다. 해방 공간에서 김구, 이승만, 박헌영 세력 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독자 노선을 걸었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매우 포용적 입장을 취하며, 해방정국 혼란기에 국론 통합을 우선시했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지속했기에 민중의 신뢰를 얻으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동아일보에 의한 신탁통치 오보사건이 보도된 이후 상황이 급변한다.

김구-이승만 등의 반탁 세력과, 박헌영 등의 신탁 세력 사이에 좌우 진영 대립이 격화된다.

그로인해 좌우합작을 주장하던 여운형 등의 입지는 좁아져 갔다.

그러던 1947년 7월 19일, 극우 성향으로 추정되는 이필형에게 암살된다. 좌우합작운동도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1919년 11월 27일, 그의 일본 도쿄 제국호텔 연설 가운데 유명한 구절이 있다.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

"우리가 건설하려는 나라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인민이 다스리는 민주공화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