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안세영 선수의 작심 발언이 쏟아지며 대한배드민턴협회가 발칵 뒤집혔다. 선수관리에 따른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는 가운데, 국민적 공분도 그에 비례하는 듯싶다. 더욱이 선수에게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의무규정까지 부과한 사실이 알려지며 충격을 안기고 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민주당 강유정 의원이 대한배드민턴협회로부터 제출받은 '국가대표 운영지침'에 따르면, 제6조 제2항 1호에서 “촌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도록 규정했고, 2호에서는 “국가대표 담당 지도자의 허가 없이는 훈련에 불참하거나 훈련장 이탈 불가”라고 못박고 있다.
이는 협회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거나, 또는 협회의 어떠한 지시라도 어기게 되면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뜻을 내포한다. 명백한 겁박에 해당되는 현대판 노예계약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협회는 이에대해 선수 보호를 위한 규정이라고 둘러대기에 여념이 없으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강 의원은 이와 관련 “생활과 훈련 중이라는 조건이 있으나, 이를 만족한다면 지도자의 어떠한 부당한 지시라도 따라야 하도록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다”면서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인의 명령 복종 의무도 '상관의 직무상 명령'으로 한정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다른 종목이나 군인에 비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과도한 것"임을 언급하며 “배드민턴협회도 안 선수와 진실공방으로 다툴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조항을 개정해 우수한 선수를 양성한다는 협회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수확하며 한국 선수단을 종합 8위로 이끈 대한양궁협회 지침과는 크게 대비된다. 국가대표 선수가 지도자의 지시를 따라야 할 사항으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지시', '정당한 인권 및 안전보호를 위한 지시사항 이행' 등으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안세영 선수가 경기 내내 오른쪽 다리에 테이핑 처방받은 모습을 보면서 걱정했다"며 "이에 대한 협회의 안일한 대처와 소통 부재가 안 선수를 실망하게 했다는 기자회견을 듣고 딸아이를 둔 부모로서 그리고 배드민턴을 사랑하는 동호인으로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제는 권력보다는 소통, 선수를 대변하는 협회로 변해야 한다"며 "시대는 바뀌고 젊은 선수들의 의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 협회는 아직도 독재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는 5선 중진의 매서운 불호령이 더해졌다.
아울러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님께서는 협회 운영과 선수 관리에 대한 자체감사나 실태조사 등을 통해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번은 고민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본다'고 말한 안 선수의 진솔한 외침을 다시 한번 꼭 살펴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국민의힘 진종오 의원은 체육계 비리제보센터 설립을 밝힌 가운데 “안세영 선수의 작심 토론이 체육계의 초라한 민낯을 드러내 보였다”며 “금빛 물결의 성취 이면에, 잘못된 관행과 소통 부재 등의 문제점이 그늘 아래 도사리고 있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혼신의 분투로 금메달을 쟁취하고도 아픈 이야기를 용기 있게 꺼내주신 안 선수의 이야기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불합리한 일들이 개선되는데 힘을 쏟겠다"며 "종목은 다르나 선배 체육인이자 체육계를 관할하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서 이번 일을 간단히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런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도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안세영 선수의 인터뷰로 논란이 된 미흡한 부상 관리, 복식 위주 훈련, 대회 출전 강요 의혹 등에 대한 경위 파악 뿐만 아니라 제도 관련 문제와 협회의 보조금 집행 및 운영 실태까지 종합적으로 살피게 된다.
제도개선 사항도 점검한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의 공정성, 관행상 금지되고 있는 개인 트레이너의 국가대표 훈련 과정 참여의 필요성, 협회의 후원 계약 방식과 선수 사이의 균형 여부, 배드민턴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제도의 합리성, 선수의 연봉체계에 따른 불합리성 여부 등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도 이 사안을 보고받고 인지하고 있다"며 "진상조사 필요성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한배드민턴협회에 2024년 기준 71억2천만 원의 보조금 지원이 이루어졌다. 차제에 대표팀 발탁 공정성, 협회 임원들의 방만한 경비 운영, 선수들 혹사 논란 등 두루 점검이 필요하다.
셔틀콕 여제 안세영 선수가 쏘아올린 외침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체육계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인 셈이다. 어쩌면 자신이 겪은 고난과 불이익을 통해 얻게 된 뼈저린 처방전일 수도 있다. 체육계 전체의 미래 발전 방향과 맞닿아 있어서다. 이를 선배와 지도자임을 앞세우는 어른들이 깨달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안세영 선수의 호소가 거슬렸던 때문일까? 대한배드민턴협회는 곧장 비난 보도자료를 내고 또 대한체육회장은 언론에 나가 선수를 매도하는 추함을 보였다. 더욱이 다른 종목 선수들과 비교하며 인격살인도 서슴지 않않다. 그 모두 국민을 모독하는 비열한 작태였다.
이제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협회 권력을 무기 삼은 거만한 갑질 횡포를 뿌리째 뽑아내야 할 시점이다. 글로벌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혁신을 향한 화두에 다름 아니다. 감투가 지닌 알량한 권위가 더는 선수에게 족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때이다.
* 필자 : 정성태(시인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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