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김의겸-장경태 의원,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공공의 선일까?

시와 칼럼 2022. 11. 2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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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1조 1항에 규정되어 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명시한 것이다. 국민이 자신들의 대리자를 직접 선출해 한시적 기간 동안 공적 업무를 위임하는 국가체제다. 개인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따른 차별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평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한다.

인류사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숱한 투쟁의 역사를 지닌다. 굳이 유럽과 미국을 대입하지 않더라도 분명해진다. 한국의 동학농민운동, 3.1운동을 비롯한 독립활동, 4.19혁명, 5.18항쟁 등 피와 죽음의 지난한 과정을 담고 있다. 인간을 보다 인간다운 삶으로 이끌기 위한 자유 확대와 평등성 신장의 위대한 유산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완의 여정에 놓여 있다.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선거철만 반짝 꽃을 피우는 듯한 한계다. 그와 함께 무분별한 자유에 따른 사회적 갈등문제도 제기된다. 아울러 평등의 기계적 함성 또한 인간의 창조적 활동과 자율성을 훼손한다. 더욱이 이들 관계를 적대적으로 돌려 세우려 하는 정치세력도 문제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 둘은 상호 보존적이며 유기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외력에 의해 급격히 쇠락하게 될 때 공동체의 운명은 파멸을 향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선거를 통해 공무를 담당한 이들의 각성이 요구된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재단하고 선동하는 불편함이다. 한국 사회 또한 그에 대해 취약한 면모를 보인다. 자칭 보수를 표방했던 군사정권에서 자유는 침몰됐다. 진보를 참칭했던 문재인 정권은 자산격차를 오히려 증폭시켰다. 이는 각종 지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이다.

무론하고 말할 자유는 천부인권에 속한다. 거기에는 빈부와 귀추가 구획되지 않는다. 특별히 현역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행한 말은 법률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치보복을 차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듯싶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하고 사실에 바탕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어떤 사안을 거짓으로 꾸며 국민을 기망하고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려 한다면 지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행한 말의 자유에는 책임 문제도 수반된다. 타인을 거짓으로 음해할 자유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권력자인 경우에는 파장력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최근 악성 거짓말 잔치가 연거푸 이어졌다.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지속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 그리고 김앤장 소속 변호사 30여명이 술집에 모여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셨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어느 유튜브 채널과 협업 관계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급기야 경찰이 첼리스트와 이세창 씨 등의 휴대전화 위치 정보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의혹 당일 오후 10시쯤 술집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챌리스트는 경찰조사에서,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늦도록 연락이 닿지 않은 이유를 추궁하자 이를 둘러대기 위해 꾸민 말이었다고 자백했다.

민주당 장경태 의원도 또 다른 비방에 합류했다.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방문 중 심장병 앓는 소년을 안은 모습을 향해 빈곤 포르노 운운하며 악담을 쏟았다. 조명을 설치해 사진을 찍었다는 주장도 펼쳤다. 모두 확인하지 않고서 비난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죽했으면 주한 캄보디아 대사가 과도한 정치공세라며 공박했겠는가? 김건희 여사 또한 "당시 현장에는 경호원, 통역사도 있었다"며 "조명을 썼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 것으로 타전된다.

이제 책임의 시간이 도래했다. 상대를 억지로 음해하고 비난하기 위해 거짓을 꾸민 것에 따른 대가다. 허위로 타인의 인격과 명예를 짓밟는 자유까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국회 윤리위 차원에서 결단할 일이겠으나, 거대 의석을 지닌 민주당에게 기대하기란 무망한 일로 여겨진다. 마침 대법원 판례 가운데는,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말한데 따른 처벌 사례가 존재한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뒤에 숨은 악의적이고 치졸한 정치공세를 혁파한다는 차원에서 필히 민형사적 대가를 치르게 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