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호텔신라 이부진 대표와 ‘노블리스 오블리주’

시와 칼럼 2022. 11. 24.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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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주’, 그 어원은 1337~1453년 사이에 발발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서 기인한다. 전쟁 10년째가 되던 1347년, 프랑스 도시 '칼레’가 영국군에 의해 포위된다. 설상가상 지원군마저 당도하지 않자 끝내 항복하는 굴욕을 겪는다. 아울러 항복 사절단을 꾸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파견한다. 승자에게 자비를 구하고자 함이었다. 이에 영국은 칼레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도시를 대표할 수 있는 여섯명의 처형을 제안한다.

이로 인해 칼레 전체가 대혼란과 두려움에 빠진다. 또한 누군가는 죽음을 맞게 될 상황 앞에서 다들 머뭇거렸다. 이때 칼레시의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처형을 자청한다. 그러자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이에 동참한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떨치고 교수대에 모인다. 칼레시민 모두를 살리기 위한 목숨을 건 결단이었다.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권력ㆍ금력ㆍ명예가 높을수록 그에 따른 도덕적 의무도 커져야 한다는 하나의 암묵적 상징으로 자리하게 된다.

당시, 영국 왕비는 임신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한 왕비가 에드워드 3세에게 저들 여섯명을 처형하지 말 것을 간청한다. 결국 에드워드 3세도 그들을 살려주는 아량을 베푼다. 죽음을 자처해 칼레시민 모두의 목숨을 구하고자 했던 여섯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했던 것이다.

호텔신라 이부진 대표와 관련한 훈훈한 미담이 세간에 알려지고 있다. 80대 모범택시 운전자가 서울 장충동 소재 호텔신라 본관의 현관을 향해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택시승객과 호텔직원 등이 부상을 입고 회전문은 완파된다. 대물 피해액만 따져도 5억 원 가량에 달했다. 문제는 '개인택시공제조합'에 가입된 가해 차량의 대물 배상한도가 5000만 원에 불과했다. 따라서 택시 운전자는 4억 원이 넘는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부진 대표는 이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회사 간부를 불러 “택시 기사도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것 같지 않은데, 이번 사고로 충격이 클 것”이라고 염려하며 "운전자가 사는 집을 방문해 형편이 어떤지 살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간부가 운전자 집에 찾아가 보니, 그는 반지하 방에서 병환 중인 부인과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지라 변상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우족과 쇠고기, 케이크를 가해 운전자의 집에 놓고 나왔다고 한다

이를 들은 이부진 대표는 “우리도 피해를 입었지만, 사고 운전자도 크게 상심했을 것"이라며 “배상을 요구하지 말고, 필요하면 치료비도 부담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고를 냈던 고령의 운전자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적 미덕이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강한 사람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 한국사회의 질적 성장과 함께 보다 성숙한 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리라 여긴다. 아무쪼록 우리사회 강자들의 선행과 미담이 거듭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크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