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고난의 길 그리고 부활절 단상/정성태

시와 칼럼 2019. 4. 2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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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가 못 박혀 죽게 될 거대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간 고난의 길이다. 지배 세력이던 로마 병정들의 채찍에 맞고 피 흘리며 올랐던 그 길, 죽음도 불사하는 헌신을 통해 부활의 역사를 맞는 역설적 진리가 담겨 있다.

 

오늘 부활절을 맞는 한국 교회, 그러나 거기 드리워진 그림자는 매우 암울하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썩어도 너무 썩었다. 예수가 그의 공생애를 통해 설파하고 실천했던 인간에 대한 헌신과 사랑은 유감스럽게도 종적을 감추었다. 오히려 온갖 적폐의 진원지로 전락해 있다는 느낌이 짙다.

 

예수가 교회 밖에서 소외된 인물로 벌벌 떨고 있다. 거기 예수는 목회자의 돈벌이 및 출세 수단으로 차용되고 있다. 이것이 적잖은 교회가 처한 현주소다. 특히 대형 교회일수록 그 사정은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띄고 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또 그렇게 믿고 싶다.

 

교인들 또한 민족애, 이웃사랑, 공동체적 규범은 별반 찾을 길 없고, 그저 목회자 비위 맞추기와 추종하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팬티 운운했던 목사, 십일조 바치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목사, 천문학적 공금을 횡령한 목사, 여성 신도 다수를 간음한 목사마저 극렬 옹호하고 지키기에 집중하는 경우마저 목도하고 있다.

 

더욱이 일제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를 앞세우고 난동을 부리며 종일 매국에 혈안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유독 같은 혈육 관계인 북한을 괴멸해야 한다며 전쟁을 부추긴다. 가난한 자를 능멸하기 일쑤고, 시스템을 통한 양극화를 공고히 하는데 그 전위대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권력 높고, 돈 많은 것이 하늘의 축복이라고 세뇌한다. 그런데 진실로 그런 것일까?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다"는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을 뜻하는지 새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그들이 때에 맞춰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기린다. 도대체 그들이 기리는 예수의 고난과 부활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참으로 기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그 얼마나 기만적이고 위선적인가? 죽어 육신은 썩을지라도 그러나 영혼은 심판대에 서게 된다는 기독교적 구원론이 아닐지라도, 바라기는 인간이 갖는 사회적 부끄러움 정도는 지닐 수 있어야 할 일이다.

 

단언컨데 헌신없이는 영광도 없다. 즉, 고난없이는 부활도 없다는 뜻이다. 오늘 한국 교회가 처한 비루한 현실 앞에 내려진 예수의 준엄한 지상 명령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