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영남과 비영남의 경계가 뚜렸하다. 그것은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구분지어 흐르는 한강 물줄기보다 더 깊고 폭넓게 맞닿아 있다. 계층과 계층, 지역과 지역, 노동과 노동, 이들을 구획하며 심화되는 불평등 구조는 극심한 격차사회를 낳고 있다. 아울러 성별에 따른 불평등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여전히 개선돼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는 그에 대한 우리 내부의 현실 인식이 현격히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피해 당사자의 입장을 곡해하거나 또는 폄훼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물론 현상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부족한 때문일 테다. 그런지라 여러 갈등 관계에서 파생되는 불평등 타파를 거론하게 되면, 그 때마다 불쑥 나서 양쪽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른바 전형적인 양비론이거나 또는 회색주의다.
이에 대해 우리는 보다 정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의로운 편에 서야 한다. 가령 상대적으로 강한 어떤 집단에 의해 아무 잘못없는 약자가 까닭없이 행패를 당하게 된다. 그런데 그에 항의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일단의 사람까지 매도하는 오류다. 이것이야말로 가해자에게 폭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 인식으로는 문제 해결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해자를 향해 시위를 당겨도 부족할 판국에, 오히려 피골이 상접한 피해자의 항변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악의 편에 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도상에서 강도 만난 자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강도에게 힘겹게 대항하는 사람을 향해 왜 대드냐고 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은 이치다. 자기 안의 편견과 아집을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잊을만하면 국민통합 얘기가 거론된다. 물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 분명하다. 이의 일환으로 김대중 ㆍ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 생가를 여야 정치권이 교차 방문하는 등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를 취한 바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오히려 조롱과 야유였다.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해 보다 심층적이고 또 사려 깊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 달라는 거친 아우성이 담겨 있다. 어떤 일회성 행사 또는 말만 앞세우는 사탕발림 식 국민통합 주장은 공허할 뿐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요원한 일임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가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바란다.
시인 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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