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박근혜 판박이, '문재인-안철수' 역사 인식 유감/정성태

시와 칼럼 2016. 1. 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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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치는 강압과 폭력 또는 회유와 기만술을 통해 국가를 통제한다. 자신들의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라면 상대세력에 대한 협박, 납치, 고문, 감금, 테러 심지어 살인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들 소수의 권력 독점자들에 의한 일방통행이 강제되며, 자신들의 사악한 만행을 오히려 합리화하거나 또는 미화시키기 위해 갖은 형태의 대국민 선전 ㆍ 선동을 일삼는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대두되고 있는 이승만 ㆍ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우상화 작업 또한 전제된 예에서 별반 빗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큰 문제는 야권의 주요 정치인으로 치장된 문재인 ㆍ 안철수 의원 또한 수구 진영의 계략에 그대로 부화뇌동하고 있다는 통탄스런 사실이다.

이승만 ㆍ 박정희 시대, 장기 독재를 일삼으며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초법적 발상의 폭군들이었다.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숱한 납치와 감금, 그리고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끔찍한 고문을 비롯해 심지어 살해까지 자행하는 등 온갖 만행을 일삼았던 장본인들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 대한 문재인 ㆍ 안철수 두 국회의원의 역사 인식은 유감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친일 ㆍ 독재세력에 뿌리를 둔 새누리당의 시각과 매우 흡사한 면모를 보이고 있어서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조종 당하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낳고 있다. 물론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한편 그러한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먼저 문재인 의원에 대해 살펴보자. 그는 "박정희 · 이승만 묘역 참배로 국론분열 종식",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의 공이 있고,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의 공로가 있다", "저는 그 분들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임 대통령으로 함께 모시고 함께 기념할 것이다"라며 문 의원이 2015년 2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수락 연설에서 했던 말이다.

안철수 의원 또한 문재인 의원과 역사 인식이 매우 유사하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통합할 당시 4.19 혁명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물론 이승만 ㆍ 박정희 묘역 참배도 있었다. 이는 올 1월에도 이어졌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워원장의 발언에 있다. 그는 올 1월 안철수 의원과 함께 이승만 ㆍ 박정희 묘역 참배 후 기자들에게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이 땅에 도입하셨고, 굳게 세우신 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 성장의 엔진을 거신 분이다” 심지어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부"라는 충격적인 표현까지 드러냈다.

이승만 ㆍ 박정희 두 독재자를 신의 반열에 올려 놓은 이들이 비단 새누리당에만 있는게 아니다. 문재인 ㆍ 안철수 의원 또한 한 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치떨리는 독재 치하에서 온갖 고통을 겪거나 억울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양심세력에 대한 씻을 길 없는 흉탄임과 동시에 역사에 대한 반동이다. 4.19 및 5.18 영령들이 무덤을 박차고 나올 것만 같은 기막힌 일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여기서 박근혜 정권이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통해 일본 아베 총리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을 살펴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작년 말 타결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요지의 구두 메시지가 그것이다. 이런 정도면 민족적 자존감을 송두리째 팔아넘긴 망국적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것도 고작 한국 화폐 100억 원도 채 되지 않는 돈이다. 슈퍼 부자가 거주하는 주택 한 채 값에 불과하다. 그것으로 치욕스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워버리겠다는 박근혜 정권의 후안무치 앞에 많은 국민이 공분을 토로하고 있다. 하물며 자신들 의견과는 전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협약 앞에 직접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거듭 아픈 것은, 문재인 ㆍ 안철수 두 정치인 또한 박근혜 정권의 역사 인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란 점이다. 언제든지 자신들 편의에 따라 역사를 아무렇게나 왜곡하고 난도질 할 개연성이 다분한 까닭이다. 이것이 오늘 날 야권이 처한 숨길 수 없는 어용성이다. 그 배후에 도대체 어떤 흑막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