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문재인, 그의 호남 폄훼와 영남 패권주의/정성태

시와 칼럼 2015. 5. 2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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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연일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언론은 이를 친노, 비노 사이의 계파 갈등 혹은 내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놓고 다투는 모습으로 몰아가고 있다. 극단적 형태의 보수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진보를 표방한다는 일부 매체까지 본질을 애써 호도하려는 경향이 역력하다. 특히 한겨레신문이 그렇다. 자칫 문재인 대표 개인의 기관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다.

물론 새정련이 처한 계파 갈등도 전면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새정련 몰락에 있어서 보다 근본적으로 작동하는 요인은 바로 당의 정체성 상실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지지층 와해와 지지율 하락에 있다.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조차 20%를 밑도는 지지율이라면 사실상 폐당 수순에 처해 있다. 이에 대한 책임 소재는 친노, 비노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떠안고 있는 치유불능의 병폐이기도 하다.

특히 문재인 대표의 정치적 행적은 야당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과연 부합한 인물인지에 대해 심각한 회의감을 낳게 하고 있다. 참여정부에서의 일탈은 차치하고라도, 19대 국회에서 그가 행한 처신은 비난 받아 마땅한 것의 연속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있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빼야 한다는 주장은 경악 그 자체였다. 새정련 대표 취임과 무섭게 살인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참배한 사건은 그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130석이나 되는 거대 야당이건만 완전히 식물정당이 되어 있다. 도대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다. 재벌 및 부자 증세를 통한 복지 재원 마련은커녕 오히려 담뱃세 인상, 노인의료비 부담 증가 등과 같은 서민 호주머니 털기를 단행했다. 그나마 남은 지갑마저 강탈한 셈이다. 물론 집권세력과의 야합에 의한 패악스런 일이었다. 그러고서도 야권층을 향해 지지해달라고 손 내미는 짓은 뻔뻔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문 대표의 악의적 호남 폄훼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자서전 가운데 “자기 아버지가 호남사람에게 돈을 사기 당해서 가난하게 살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진위를 확인할 방도는 없으나, 설혹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는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낸 사람으로서는 금기시해야 할 대목이다. 따라서 다분히 의도된 목적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서 첨언할 점은 대구, 부산 지역의 강력범죄 발생률이 호남에 비해 오히려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표의 그릇된 인식은 그가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핵심 실세로 군림하던 시절에 여실히 드러난다. 호남 출신에 대해서는 청와대 고위직은 고사하고 심지어 청소부까지 쫓아냈다는 원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원조 친노 좌장격인 염동연 전 의원 또한 유사한 증언을 한 바 있다. 결국 ‘우리가 남이가’로 통칭되는 영남패권주의 망령이 뼛속까지 깃든 부류다. 딱히 새누리당과의 변별성을 찾자면, 성골과 진골 정도의 신분 차이라 하겠다. 즉, 영남 1진과 2진의 물밑 연대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이는 유시민 전 의원이 내뱉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는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결국 희대의 국고 찬탈범인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것이고, 작금 박근혜 정권의 막가파식 정치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적 특성과 정서를 악용하는 이들 정치 거간꾼들이야말로 철저한 지역주의자들이다. 이런 부류와 사회 개혁 및 진보 정치를 논한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차마 인간의 품성과 대면한다는 것 또한 실로 무망한 일로 여겨진다.

문제는 또 있다. 여야 공히 썩을 대로 푹 썩은 영남패권에 기생하며 연신 호남을 고립시키는 앵벌이 정치인들이다. 강자의 편에 붙어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기에 여념 없는 호남 출신 일부 정치꾼들 또한 다르지 않다. 철학도 근본도 없는 자들이 선거 때만 되면 표를 달라며 호남을 파는 넋 나간 행태를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일제 강점기 때 민족을 팔아넘긴 친일 매국노들의 속성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친노, 비노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부끄러운 자화상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