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가정 형편 따라 줄 세우는 초등학교 예비소집/정성태

시와 칼럼 2015. 1. 17. 21:20
728x90

“고급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은 왼쪽으로 줄서고,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은 오른쪽으로 줄서라”라는 식의 경악할만한 사건이 경북 안동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예비소집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것도 팻말에 큼지막하게 적어서 거기 따라 200여 명 가량을 줄 세웠다고 하니 그야말로 경천동지 할 일이 따로 없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는, 초급 교육 현장에서 심각한 인권 유린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이의 감독 기관인 경북교육청이 해당 학교에 대해 아무런 징계 조치도 취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태도다. 학교장은 물론이고, 관련 교사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마땅한 사안일 것이다. 그런데도 유야무야 넘기겠다는 행태는 학교 측과 경북교육청의 굴절된 인식이 매양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사건 당일 학부모들이 현장에서 겪었을 모멸감은 차치하고라도, 어린 아이들이 느꼈을 마음의 상처는 또 어떠했을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이 든 사람으로서 참으로 송구하고 또 난감한 마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저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런 지경으로까지 퇴락한 우리 안의 미개함에 대해 그 무슨 말로 다 사죄할 수 있을지 참담한 심경이 앞선다.

 

인간의 가치가 거주하는 집의 크기와 소유 여부 그리고 자동차의 배기량에 따라 달라지고 구분되는 활극의 한복판에 대한민국 사회가 놓여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듯싶다. 바로 이런 따위의 천박한 구획이 이명박의 온갖 기만책동을 낳게 한 것이고 또 박근혜의 폭압적 독선을 부르는 것이다. 아울러 너도 나도 상대를 철저하게 짓밟아야만 군림할 수 있게 된다는 정글의 법칙에 익숙하게 길들여지게 된다.

 

그로인한 폐해는 공동체 전체가 황폐화되고 결국 소수 특권층을 제외한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강자 독식의 사회상이 팽배해질수록 극단적 양극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고, 이는 극심한 사회불안을 야기하게 됨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해갈할 국가 책임은 오히려 증대된다. 특히 정신적 갈등을 조정할 비용은 쉽사리 계산조차 되지 않는 항목이다.

 

더 늦기 전에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임금상한제’ 또는 ‘동일사업장 임금편차상한제’ 실시에 관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분배 정의를 구현하고, 생산적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사용자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현격한 편차 또는 불공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보편적 복지 또한 손에 잡히는 형태로 실현될 수 있겠기에 더욱 그렇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