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문재인 의원의 유아적 정치 행태 시정돼야/정성태

시와 칼럼 2013. 6. 3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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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왕(1392∼1863)에 이르는 역사적 사실을 사관의 철저한 기록에 의해, 그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해서 편찬한 책이다. 기록자에 대한 관직의 독립성이 유지되었음은 물론이고, 임금이라 할지라도 열람할 수 없도록 철저히 비밀이 보장되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왜 왕까지 열람을 금하게 했던 것일까? 우선적인 것이, 기록자인 사관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염려한 때문이다. 기록물에 대한 비밀 보장이 없게 되면, 올바르고 충실한 기록을 남기는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대 왕들이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기에, 이를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정원의 부정선거 개입 의혹이 이미 사실로 확인됐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참담한 사태라는 점에서 끓어 오르는 공분을 금할 길이 없다. 국민적 공감대 또한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그에 따른 규탄 대열에 날로 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아성인 대구 경북 지역에서조차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런 정국에서 자신들의 엄청난 범법 행위를 상쇄할 목적으로 국정원은 지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남북 정상 간의 대화록을 무단 공개했다. 새누리당은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문제의 본질인 국정원의 부정선거 개입을 희석시키고자 노심초사다. 국가 정상 사이에 나누게 된 내밀한 외교적 활동이 국내외적으로 들추어진 것이다.

 

여기서 더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된다. 바로 문재인 의원의 발언으로, "국가기록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을 제안한다"라며 맞불을 놓은 것이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 그리고 친노 핵심인 문재인 의원은 또 그의 정파적 이해에 의해 국가 정상 사이에 나눈 대화록을 완전히 까발기자는 철부지짓을 서슴없이 부추기고 있다.

제왕적 군주 사회나 다름 없던 조선시대에서조차, 임금도 열람할 수 없도록 금했던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의미를 되새김질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개인 또는 정파와 정당의 이해 관계에 따라, 그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국가 정상 사이의 대화록이 공개된다면 향후 어떤 일이 초래될 것인지 먼저 따져 물을 수 있어야 책임 있는 정치인이다.

 

차제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지난 참여정부 당시, 한나라당과의 공조로 햇볕정책을 특검한 바 있다. 문재인 의원은 이를 주도적으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소됐던 관련자 모두가 법원에 의해 무죄로 풀려 났다. 어쩌면 이번 그의 대화록 완전 공개 요구 또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짙다. 참으로 유아적인 사람이다.

 

분명한 것은, 그의 정치적 식견과 안목이 매우 저열하고 감정에 우선된다는 점이다. 차분한 논거와 합리적 이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국정원 사태를 대하는 새누리당 또한 다르지 않다. 아울러 이를 희석시킬 의도에서 비롯된 남북 정상 간의 대화록을 공개토록 했다는 점에서도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그리고 NLL과 관련, 이를 포기하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공개된 자료 어디에도 없다. 다만 해석상 혹여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그에 대해 사과하고 향후 NLL을 적극 수호할 것임을 밝히는 게 일국의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될 도리다. 그저 감정에 휘둘려 갈팡질팡한다면 어디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권력의 정점을 달렸던 그다. 왜 참여정부가 패퇴하고 또 친노 정치인이 인구 사이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는지, 문재인 의원의 충동적인 발언을 통해 상당 부문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굳이 국정원의 댓글 놀이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란 것이다.

 

정성태 : 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