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안철수 의원측 진보적 자유주의에 부쳐/정성태

시와 칼럼 2013. 6. 14.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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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측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언뜻 상호 양립되는 개념으로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체성 차원에서의 의구심도 따르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국민 주권이란 측면에서의 개인의 자유 의지와, 공동의 선을 이루기 위한 진보적 가치 사이에서의 충돌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종전의 대립적 진영 논리에 매몰된데 따르는 성급한 착시에 불과하다. 개인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역량을 인정하고 또 강조하면서도, 그러한 개별적 성과가 사회적 공동체를 위해 복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의 적절한 작동이 있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는데서 기인하는 오류다.

 

다시 말해 시장 질서를 존중하지만, 결코 시장에만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물론 이들 사이에서 충돌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시스템이 어떻게 목표를 향해 융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핵심적 관건이라 하겠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실행 주체인 조직 구성원들의 높은 도덕성과 양심이 전제되어야 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결국 고도의 정치 철학과 물질 앞에서의 청빈한 자세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스스로의 타당한 명분을 얻지 못한다면, 친일 매국 반동세력이 내세우는 자유주의와 동의어로 취급 받을 수 있다. 혹은 공멸의 함정을 파는 전체주의로의 패퇴를 초래할 개연성도 상존한다.

 

뉴라이트 부류의 퇴행적 자유주의 행태를 통해 보고 있듯, 공공의 목표 의식이 무너진 곳에서는 악취만 진동하는 이치와 같다. 거기 진보적 실천력 또한 위기에 봉착됨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아울러 지구상의 독제 체제를 통해 보고 있듯, 자칫 자기 기만과 폐쇄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또한 개인의 창의적 상상력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피차 부족한 인간의 자식임을 우선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늘 진지하게 성찰하고 또 겸손한 자세로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절대주의화 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또 이를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타인의 사익이 전제되지 않는 견해를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제 큰 틀에서의 좌표는 설정된 듯하다. 문제는 구체적 내용물을 꾸준히 담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들을 두루 한데 융합하고 또 어우러지게 하는 절묘한 시스템과 인적 자원이다. 제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이를 운용할 사람의 자질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매사 허사다. 안철수 의원측은 이를 특별히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정성태 : 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