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평화의 사도가 아닌 파괴의 전령 미국/정성태

시와 칼럼 2010. 9. 27.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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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은 1979년 이라크 최초의 민정 대통령에 오른 인물로 그는 한 때 서방세계로부터 중동 근대화의 희망으로까지 평가받은 바 있다. 그런 그가 오늘 날에는 어떻게 해서 이라크의 잔혹한 독재자로 낙인 찍힌 것일까? 후세인이 이라크 대통령에 오른 그 해, 이란에서는 호메이니의 회교혁명이 일어나면서 친미 정권이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게 된다. 그러자 미국은 이란을 견제할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후세인을 선택하게 되고 아울러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중동의 실권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대량 살상무기를 비롯한 막강한 군사적 지원을 약속 받은 후세인은 1980년 마침내 이란과의 전쟁을 강행하게 된다. 그리고 8년간에 걸친 전쟁 끝에 200만이라는 엄청난 양측 사상자를 내고 결국 미국의 대리전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종전이 임박할 무렵인 1986년에는 미국의 생화학무기 지원을 받은 후세인이 쿠르드족 5,000여명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처절한 절규와 피의 살육 그리고 그 파괴의 중심에 실상은 미국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미국 조지워싱턴대 부설 국가안보기록보존소의 비밀문서 공개를 통해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비열하고 파렴치한 음모를 더욱 확연히 알 수 있게 된다. 이란과 이라크 전쟁에서 초기 이라크가 수세에 몰리게 되자 현 미국 공화당 부시 행정부의 대표적 강경파로 알려진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당시 미국 공화당 레이건 정권의 중동 특사 자격으로 83년과 84년 두 차례에 거쳐 후세인을 만난 자리에서 이라크에 대한 군사지원을 굳건히 확인해 줬다는 사실이다. 기록보존소측의 추가된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의 생화학무기 사용을 비판했던 미국이 정작 다른 한편으로는 후세인에게 대량 살상무기의 획득을 돕고 이의 사용을 묵인했다는 경악스런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이를 바꿔 말하자면 미국이 후세인의 손을 빌려 자신들의 천인공노 할 만행을 감추려 했다는 것으로 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자 한다.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1979년 전까지만 해도 이란은 중동지방에서 사실상의 유일무이한 강대국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팔레비 왕조가 미국의 석유업자 그리고 군수산업체와 결탁해 중동지역에서의 가장 막강한 군사대국으로 군림하게 됨으로써 미국은 이란을 통해 중동지역에서의 확고한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미국의 이란에 대한 종속적 지배관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던 과격 회교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정 체제를 축출하고 이란에서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외세 배척을 바탕으로 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민족주의자 호메이니가 미국과 관련된 많은 것을 부정하고 끝내 미국과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국의 값싼 석유확보에 비상이 걸리게 된 것은 물론이고 그간 중동지역에서 누렸던 미국의 영향력에 적잖은 누수가 발생하게 된다. 아울러 미국의 일그러진 자존심에도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이란은 미국에 의해 악의 축으로 지목되었으며 아울러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파트너로 미국은 이라크의 후세인을 끌어 들이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당초 의도와는 달리 오늘 날 이라크에서 전개되는 양상은 미국이 또 한 번의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는 결과만을 낳고 있다. 이는 미국의 부도덕성에 기인한 중동지역에서의 딜레마에 다름 아닌 것으로써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모순의 산물인 것이며 그로 인한 당연지사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그간 미국이 지구촌에서 행한 전쟁의 당위성이란 것이 대부분 그 얼마나 허무맹랑한 논리인가 하는 것이다. 지난 1991년 개전된 걸프전을 통해서도 이는 잘 입증되고 있다. 당시 미국과 영국이 최소한 300t 이상의 열화우라늄탄을 대량 살포했다는 점이다. 이를 입증하 듯, 전쟁이 발발하던 당해년도에는 4300여명이던 이라크의 암 환자가 수가 1997년에는 무려 6200여명으로 급증했다는 통계자료가 나와 있다. 결국 미국이 이라크 침략으로 내 세운 대량 살상무기와 핵시설 제거라는 명분이 하등 자국의 이익을 위한 하나의 기만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빈 라덴의 경우다. 1979년 12월 구 소련군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할 당시만 해도 빈 라덴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중동지역에서조차 그리 크게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구 소련군이 아프칸을 침공하면서부터 그는 중동지역 내에서 차츰 부각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주요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빈 라덴의 행적을 더듬어 보면 중동문제에 대한 미국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쉽사리 깨닫게 된다. 구 소련군이 아프칸을 침공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80년 1월, 빈 라덴은 당시 구 소련에 대한 저항세력이 있던 파키스탄으로 건너 가 아프칸 무자헤딘 지도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빈 라덴의 인생에 있어 일대 전환의 계기를 맞는다. 그 무렵부터 그는 가족에게 무자헤딘 지원자금을 모으자고 제의하게 될 뿐만 아니라 또 실제 파키스탄에도 자주 가 모금 활동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아프칸 전쟁에 참전할 이슬람 전사 모집 운동에도 열중하게 된다. 이와 맞물려 미국의 CIA도 비밀리에 이슬람 전사들의 구 소련군에 대한 항전을 돕게 되는 데, 이는 중동지역에 있어서 구 소련과의 패권다툼에 따른 미국의 영향력 확보에 있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런 와중에서 미국과 빈 라덴간에 모종의 협약이 이루어진 것임도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빈 라덴도 당초에는 미국이 테러리스트로 키워서 구 소련에 대항하게 했던 인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중동정책에 대한 방향선회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중대한 오류 가운데 하나가 이슬람 원리주의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 내지는 고의적 무시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갖는 근본적인 취지가 제국주의와 전제주의에 대한 항거임은 애써 외면한 채, 자국의 이익만을 염두에 둔 무모하고 파렴치한 중동정책이 계속되는 한, 이는 결국 제 2의 베트남전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미국의 몰상식한 작태가 지속될 수록 이로 인한 불씨는 지구촌 전체의 화약고로 작용할 수 있음도 명백하다. 세계국가가 갖는 그 나름의 고유한 특성은 철저히 묻어둔 채, 오직 힘의 우위를 통한 패권강화에만 몰입한다면 미국이 설 자리도 그만큼 옹색해 질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이 표면적으로 내 세우고 있는 세계평화와도 절대적 모순관계에 처해 있는 것으로써 결국 미국의 전향적인 자세가 획기적으로 선행되지 않고서는 세계평화도 그만큼 요원할 뿐이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의 자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시인 정성태

2004년 10월 13일

 

정성태 정치칼럼집 "창녀정치 봇짐정치"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