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박진 외교라인, 윤석열 정부에 결정적 패착되나?

시와 칼럼 2023. 3. 13. 17:20
728x90

외교에 있어 경계해야 할 점이 있는 듯싶다. 우리가 선한 의도를 지니고 있으니, 상대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에 기대어 원칙을 잃게 되면 오히려 뜻하지 않는 결과로 귀결된다. 특히 역사, 영토, 주권에 관한 것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취할 수 있어야 오히려 얻게 된다. 그런데 이게 불투명성 혹은 모호성을 띠게 되면 상대는 우리를 만만하게 여기게 된다. 자기 손에 넣고 손쉽게 주물럭거릴 수 있는 하등한 존재로 취급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상용 강조하는 "평화는 튼튼한 국방을 담보할 때 가능하다"는 발언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국방은 감성이 아닌 냉정한 현실의 기반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외국이 무력으로 도발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응징을 가할 수 있어야 상대가 넘볼 수 없게 된다. 이를테면 나도 죽지만, 너도 죽게 된다는 확실한 장치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외교 또한 그와 맥을 함께 한다.

박진 외교 라인이 국민적 감정선을 도발했다. 정부가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끌어내기 위한 외교협상을 했다고는 하나, 성과는 전무한 실정이다. 일본이 그간 요구했던 그대로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말았다. 이걸 외교성과는 고사하고, 기본 외교활동으로 여길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난감한 마음이 앞설 따름이다.

혹여 이러한 기조가 지속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고전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수도권에서의 대패가 예견되고 있다. 이는 자칫 대구ㆍ경북당으로 쪼그라들 위험성마저 안고 있다. 물론 일본과도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박진 외교라인의 지금과 같은 안이하고 태만한 자세로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적 역린을 건드리는 형국이 되고 만 셈이다.

더욱이 그로부터 불과 사흘 후,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어떤 것이든 강제 노동 조약상 강제 노동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강제 노동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일관된 입장에 근거해 대응 하겠습니다"라는 망언을 쏟아냈다. 이로인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 오히려 부정적 기류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박진 외교라인의 참사에 다름 아니다.

물론 1965년 있었던 한일협정은 국가 사이에 타결된 것이 맞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배상과는 별개의 문제다. 더욱이 한국 대법원은 2012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단서는, 중국 피해자들은 이미 사죄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도의적 차원의 배상금도 받은 바 있다.

2015년 7월, 당시 '미쓰비시 머터리얼' 상무였던 '기무라 히카루'는 미국 LA까지 가서 미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미쓰비시 광업을 계승한 회사로서 과거의 비극에 대해 윤리적인 책임을 통감합니다"라고 사죄했다. 이에 한국과 중국 언론들이 미국에게만 사과하는 것을 비판하자, 미쓰비시 측은 곧바로 중국 피해자에게도 보상을 약속했고, 이듬해 합의문까지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피해자 3천700여 명에게 1인당 10만 위안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반면 한국 피해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과도 배상도 거부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160만 강제노동 피해자에게 44억 유로를 배상한 바 있다. 이 또한 '배상'이 아니라 '일회성 지급이행'이라고 쓰고 있다. 즉, 한 번의 지급으로는 배상될 수 없는 피해인만큼, 계속해서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일본의 사특한 행태와는 달라도 너무 크게 다르다.

이제 국민들은 이재명 피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어차피 감옥가게 될 사람, 뭘해도 그러려니 한다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진 외교 라인의 그것은 문재인 정권 5년의 실정과 이재명 범법행위 등 그 모든 것을 일거에 잠재우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정치적으로 죽은 목숨에 다름 아닌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숱한 의혹이 묻히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어떤 보고를 받고, 또 어떤 사정에 의해 수용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국민 절대 다수의 우려스러운 여론을 외면할 정도의 가치가 있었느냐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여론이 악화되면 대통령 발언에 무게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정 동력도 약화되게 된다. 총선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특별히 내년 총선 이후엔,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다. 지금은 권력 초반기라서 누수현상이 없으나, 총선 이후에는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거기다 의석수까지 크게 밀리게 되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따라서 대통령실 비서진들은, 자신의 직을 걸고 대통령께 간언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 충신과 간신을 가르는 잣대가 마련된다. 이를 따갑게 새길 수 있어야 한다.

* 필자 : 정성태(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