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기타]

정치 지향적인 목사, 대체로 사탄 마귀의 자식일 뿐이다!

시와 칼럼 2022. 10. 2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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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일 듯싶다. 공직자이던 선친은 건강 악화로 인해 낙향해 계셨다. 그때 내게 하셨던 말씀이 가끔 생각나곤 한다. "억울한 사람을 도와 주는 판사가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나중에 어른이 되면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그때만해도 판사가 뭔지 잘 몰랐다. 다만 선친의 말씀 때문인지, 어렴풋이 억울한 사람을 도와 주는 높은 사람인 정도로만 알았다. 나중에 철이 들어 살펴보니, 판사는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은 징역 보내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은 풀어 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는 경향성을 뜻하는 것이니, 전국의 판사들은 절대 발끈하지 말기 바란다.

돈, 싫어 할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아직 단 한 번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넉넉하면 넉넉한만큼 쓰고, 부족하면 부족한만큼 쓰면 된다는 입장으로 여태 살아왔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죽을 때 싸들고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절대자에게는 뇌물도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가정을 꾸린다고 생각하면 사뭇 사정이 달라진다. 처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마치 현실인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혹여 마누라가 생기게 되면 체면치레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굳이 부자가 되겠다는 입장은 진실로 아니다.

아직도 꿈꾸는 것은, 소년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선친의 가르침이다. "판사가 돼서 억울한 사람을 도와 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만 일찌감치 망가지고 말았다. 중학교 입학과 함께 좀 논다는 녀석들과 어울려 쏘다니는 통에 어느새 공부와는 담을 쌓고 말았다. 판사의 꿈도 그와 함께 일찌감치 달아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꿈꾸는 것이 있다. 국가의 고장난 제도에 의해 가난을 강요당하는 이들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만은 지금도 유효하다. 난 그게 부자가 되는 일보다 훨씬 더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다.

이런 글을 쓰다보니 20대 후반 무렵, 신학교 입학을 두 곳에서 권면받았던 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한 분은 이북 출신의 재력가셨는데, 예장합동 소속 교회에 출석하시던 집사셨다. 다른 한 분은 극동방송과 개신교 관련 출판사에 관여하던 침례교 목사셨다. 두 분 모두 이런저런 방편으로 생활비와 학비를 능히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씀도 있었다.

당시 구도의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사뭇 있었다. 그런데도 선뜻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선 다니던 교회가 기장에 속한 교단이었고, 기장 교단 목회자가 옳겠다고 여긴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여인의 유혹에 쉽게 넘어지는 편인데 과연 신 앞에 온전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도 들었다.

그런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모두 고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기장 교단도 떠나게 되는 변화도 겪었다. 기장 교단이 틀려서가 아니라, 복음의 선후가 바뀌어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때문이다. 이후 여러 교회를 순례하던 끝에 정한 곳이 예장 통합에 속한 어느 교회였다. 그런데 이 또한 두 번째 출석하던 날, 구관 보수공사 때문에 신관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문제는 전 주에 구관에서 예배드릴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하여 보수공사를 마치면 출석할 요량으로 지내다, 여태 나이론 신자로 남게 됐다.

이제 신앙적 입장을 정리하자면, 필요 이상의 정치 지향적인 목사, 대체로 사탄 마귀의 자식일 뿐이다! 외피는 십자가를 차용했으나, 그 심중에는 맘몬의 우상이 가득한 자에 불과하다. 신의 거룩함과 절대성을 희롱하며 자신의 치부 쌓기에 여념없는 더러운 악귀다. 성전을 떠나 정치판에 끼는 것이 그의 가난한 양들을 위해 옳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