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담뱃값 폭풍인상 철회... 그 이율배반에 대해/정성태

시와 칼럼 2021. 1. 30.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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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겨울 방학이었다. 혹독한 추위가 상당 기간 지속되던 때다. 그런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마을 친구들과 후배들이 칡 캐러 가자고 부추겨서 길을 나섰다. 난생 처음 직접 칡을 캔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설레기도 했다. 한참동안 들판을 건넌 후 산길 깊숙한 곳에 들었다. 아마 두어시간 이상 걸었던 듯싶다. 얼마나 추웠던지 가죽장갑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손끝이 끊어지는 듯 아려왔다.

일행 가운데 몇몇은 어디로 가야만 칡이 있는지 또 어떤게 칡넝쿨인지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쉽게 칡을 찾을 수 있었다. 이윽고 들고 갔던 곡갱이와 삽 등으로 땅을 파헤치는데, 칡 두께가 성인 허벅지 정도였다. 신바람이 절로 솟았다. 그런데 칡 몸통 방향이 거의 아래로 뻗어 있었다. 몸통에 비해 덜 굵은 가지는 다소 옆을 향했다. 동무들이 서로 번갈아가며 땅을 팠다. 혹독한 추위임에도 흘린 땀이 외투까지 적셨다. 아마 황소 한 마리 쯤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깊이와 넓이만큼 파헤쳤던 듯싶다. 그런 이후에야 거대한 크기의 칡을 얻는 기쁨을 누렸다.

세상 일이 매사 그런 듯싶다. 농사, 예술창작, 건설, 과학연구, 학문, 공장의 생산활동 등 노력과 정성없이 온전히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다. 특히 정치영역은 더욱 그렇다고 여긴다. 사람들의 삶을 보이지 않게 간섭하고 규정짓는 힘을 지녔기에 그렇다. 그런데 정치권력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온갖 특혜는 줄이거나 내려놓지 않고, 고통 가운데 처한 국민을 향해서만 더 많은 짐을 떠맡기려 한다면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청와대, 국회, 국정원, 법원, 검찰 비롯한 권력기관 아울러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 등에서 줄줄 새는 돈만 줄일 수 있어도 전체 국가예산 가운데 10%는 충분히 절감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그런 재원으로 역병 와중에서 위태롭게 삶의 강을 건너는 국민 일반을 구제할 생각은 왜 안하는 것일까?

그런데도 이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듯, 보건복지부가 담뱃세 폭풍 인상 방침을 꺼냈다. 그러다 국무총리가 시급히 나서 입장을 선회했다. 서민들 애환과 시름을 달래주는 대표적 기호품이 담배다. 그런 서민들 쌈짓돈 후려치는 것과 다름없는 담뱃세 폭탄 움직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화들짝 놀라 무마하려는 듯싶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공약 가운데 담뱃값 인하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이를 이행하기는 커녕 오히려 두 배 가까이 담뱃값을 올릴 궁리였으니, 아연 말문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 보자면, 문재인 정권 들어서기 무섭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괴이한 일이 자행됐다. 주택을 수백채씩 보유한 슈퍼 부자들에게 세제혜택을 안겨준 것이다. 그러자 이를 틈탄 주택매입 광풍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그에 덩달아 청년층이 갭투자에 나서는 등 주택값이 요동치며 바벨탑을 쌓았다. 그에따른 주택 부자들의 자산규모도 천문학적 증대를 이뤘을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그런반면 담뱃세 폭탄 통해 서민들 지갑 털어낼 발상을 했던 것이다. 무책임하고 안이한 국정운영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가인지, 그 이율배반에 따른 국민적 배신감이 어떨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