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경찰, 검찰, 법원 스스로 명예로울 수 있어야/정성태

시와 칼럼 2019. 10. 27. 18:12
728x90

30년만에 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다. 1989년,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 8차 범행 당사자인 이 아무개의 자백을 근거로 실시된 DNA 검사를 통해 특정됐다. 그와 맞물려 경찰이 저지른 만행과 치부 또한 말갛게 드러났다.

 

거기엔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 아무개 씨가 있다. 다리에 장애가 있어 정상적인 보행도 어려운 처지다. 그런 그가 "경찰이 양심이 있으면 당당히 나와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언론의 잘못된 보도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경찰이 잠을 재우지 않고, 심한 구타와 함께 거짓 자백을 강요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에 의해 억울하게 뒤바뀐 사건을 더 소환해보자.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 소재 어느 슈퍼에서 할머니가 살해됐다. 동네 청년 세 사람이 범인으로 몰려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의 폭행과 강압에 못이겨 허위 자백을 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2명은 지적 장애를 안고 있었다. 복역을 마친 후 재심 끝에 무죄를 인정 받았다.

 

그 과정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부산지검에서 그들과는 다른 3명을 진범으로 지목해 사건을 맡았던 전주지검 담당 검사에게 넘겼으나 무슨 이유 때문이지 무혐의로 풀어줬다. 그런데 부산지검에서 진범으로 지목한 3명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고 다른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다른 사건을 들여다보자.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최초 목격자로 당시 15세인 최 아무개 씨를 살인범으로 지목했고, 그는 결국 10년 동안 까닭모를 징역을 살았다. 유일한 목격자에서 오히려 살인범이 된 어린 소년은 경찰이 휘두른 폭행과 감금 등 서슬퍼런 강압에 의해 누명을 쓴 것이었다.

 

이 또한 납득할 수 없는 점이 깔려 있다. 15세 소년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진범으로 지목된 김 아무개가 검거됐다. 진술 또한 범행정황에 가까웠다. 그런데 검찰은 어찌된 영문인지 그와 관련된 재수사를 반대했다. 힘 없고, 돈 없고, 백 없어 세상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던 그는 만기 출소 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만일 진범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어찌됐을까?

 

최근 강남 고급 술집을 둘러싸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소위 버닝썬 사태가 있다. 이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되고 심지어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여러명의 경찰관에게 집단 구타당한 사실이 국감 증언을 통해 알려졌다. 특별히 주목되는 점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부하로 속해 있던 윤 아무개 행정관이 연루된 때문이다.

 

버닝썬 관계자들이 나눈 카톡방 대화에는 윤 아무개 행정관이 경찰총장으로 불렸다고 한다. 경찰 총경에 불과한 일개 행정관이 경찰청장보다 더 영향력이 컸음을 뜻하는 듯싶다. 경찰의 축소 수사 논란과 함께 여전히 경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부추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다시금 경찰, 검찰, 법원 등 권력 기관이 지녀야 할 공정과 정의의 수호자로서 그 역할과 책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권한이 크게 부여된만큼, 그에 걸맞는 공권력 행사 또한 요구되는 것이다.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 이전에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직자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명예로운 길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