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극일(克日) 저해, 비단 토착왜구 세력만 문제일까?/정성태

시와 칼럼 2019. 8. 6. 01:42
728x90

한-일 관계가 최악 국면에 빠져들었다. 해방 이후 이보다 더 악화된 적은 없었던 듯싶다. 군부독재 시절을 비롯한, 소위 민주정부로 불리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파탄으로 내몰릴 상황은 상호 초래하지 않았다. "일본에게 본떼를 보여줘야 한다"던 김영삼 정부도 결국 본떼를 보여주기는 커녕 오히려 망신에 다름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확전 양상을 낳고 있는 일본의 경제보복 발화 지점은 강제징용 문제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인 강제징용에 따른 피해자들에게 배상 책임이 있음을 판결한 바 있다. 그런 이후 아베 내각은 한국 정부를 향해 외교적 협의를 갖자고 지속해 요구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실상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추론하건데, 개인 청구권은 국가 사이의 협정을 통해 소멸되지 않는다는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 등을 근거로 문재인 정부가 상황을 낙관했을 수도 있다. 더욱이 한-중 사이에도 개인의 실체적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적용한 바 있다. 국제법에 비춰봐도 설혹 국가 간에는 어떤 문제 해결이 됐더라도 그러나 개인의 배상 청구권은 여전히 별개로 남는다는 기류 또한 작용했을 개연성이 높다.

 

일본 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한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한겨레신문 기고를 통해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청구권 소멸 못하는 건 국제법 상식" 주장을 펴기도 했다. 물론 아베 수상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강한 입장이다. 고노 다로 외무상도 “판결은 폭거이며 국제법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다”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바로 여기서 일본 아베 내각의 파렴치한 속내를 읽게 된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의 대처 능력 부족 또한 아마추어적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당초 일본의 경제도발 움직임이 감지된 작년 11월부터 그리고 현실화되던 금년 7월 초까지 무려 8개월 가량을 무대책, 무외교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국회가 이를 우려해 여야 5당이 초당 외교에 나서려했으나 청와대의 싸늘한 외면 속에 멈춰서야만 했다.

 

그러다 아베 수상이 전격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들자, 그제서야 놀란 문재인 정부가 두 차례 특사 파견에 나서게 된다. 어쩌면 일본의 협의 요청에 대해 8개월 가량 늦게 입장을 밝히게 된 상황을 설명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를테면 일본을 달래기 위한 일이었으나, 그러나 멸시에 다름아닌 냉대를 받고 물러섰다. 국회도 비록 늦었으나, 여야 5당 공히 초당적으로 외교단을 꾸려 일본 방문에 나섰다가 문전박대에 빈손 귀국했다.

 

처음 아베 수상의 경제보복이 불거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켰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의지는 대단히 중요하고 또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실행 로드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두 추상적 언사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제기됐던 바를 그대로 반복 재생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청와대 및 민주당 주요 인사들 발언을 통해 과연 문 정부의 그러한 말의 성찬마저 의심하게 된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죽창을 들자는 여론 선동 이후 서울대 교수로 피신했다. 죽창들고 앞장서야 할 당사자가, 죽창은 어디두고 고액 연봉에 서늘한 에어컨 바람 풍족한 국립 서울대 교수로 숨어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이율배반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최첨단 무기 시대에 죽창 따위로 무장했다간 그대로 몰살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더욱이 그는 일개 네티즌 신분이 아닌 대통령 최측근 참모였다.

 

또한 민주당 정책연구원 양정철 원장은 일본 문제를 총선 때까지 끌고가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렇다면 총선 후엔 원점으로 돌아가는 0시 열차를 타겠다는 뜻일까? 집권당 정책연구원장 수준이 고작 이런 정도니 말문 막히게 된다. 민주당 김진표 의원 또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광복절 이후로 연기해달라고 일본에 가서 사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차라리 향후 한국 총선이 있으니 그때까지 봐달라고 빌었으면 어떨까?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권당 이해찬 대표는 일본이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한 직후 일식집에서 사케 오찬을 했다. 이게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사케가 아닌 청주를 마셨다고 발뺌했다. 거짓말까지 덧붙인 셈이 됐다. 노무현 정권에서 국무총리 역임할 당시 장대비까지 맞아가며 골프 삼매경에 빠졌던 안하무인, 내로남불 습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듯싶다. 일본 아베 수상 측에서 볼 때, 그 얼마나 가소롭게 여길 행태겠는가?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전범기업 포함된 일본기업에 7조원 가량을 투자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가난한 서민들 노후 생명줄 갖은 돈으로 왜국 기업을 배불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한편 일본 자금은 국내에 수십조가 들어와 고리업 등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 대일본 제조업 무역 적자 뿐만 아니라, 금융 부문에 있어서도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다. 불현듯 사납게 들이닥치는 파도를 만난 심경에 비견될 듯싶다.

 

일본에서 발생한 폐기물 수입 또한 심각한 양상이다. 폐플라스틱의 경우, 작년 동기 대비 34% 가량 더 들여왔다. 일본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한 후에 발생하는 찌꺼기인 석탄재 도입량도 전체의 94% 가량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 쓰레기 하치장이라는 비아냥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특히 폐기물 경우엔 수집한 장소를 특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혹은 그 주변에서 수거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참으로 의문스런 지점이다. 오죽했으면 중국은 물론이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도 일본 폐기물 수입 전면 금지에 나섰겠는가?

 

국민 일반은 자발적으로 극일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에대해 찬물을 끼얹는 집권세력의 졸렬함 앞에 아연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야수적 만행에 뜨거운 가슴으로 맞서는 국민적 열망이 심장을 벅차게 한다. 그런 반면 정부 여당의 안이하고 무기력한 민낯은 그저 한없이 민망한 마음을 갖게 할 따름이다. 국민 대다수는 일본을 이겨보자고 모든 힘을 쏟고 있는데, 국정을 무한 책임져야 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프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