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권력 갑질 성폭행 범죄 무겁게 단죄돼야/정성태

시와 칼럼 2018. 3. 1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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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공직에 있던 부친은 건강문제로 낙향했다. 이후 질환이 더 악화돼 복직하지 못했다. 여러번 수술을 권했으나 몸에 칼대는 것 싫다고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실은 겁이 많았던 듯싶다. 시골 집에서 저녁에 화장실 갈 때는 입구에 보초를 세울 정도였다. 중학교 3학년이던 이른 봄, 악화된 지병으로 인해 소천했다. 가세는 형편없이 기울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즈음, 광주로 전학 갔다. 외갓댁이었다. 외삼촌들이 봤을 삼국지를 비롯한 소설 등의 책이 꽤 있었다. 눈에 띄는대로 읽어 나갔다. 그 이듬해 가을, 공직 생활을 하던 숙부가 광주로 발령나자 거주지를 그리 옮겼다. 세계문학 전집을 비롯한 도서가 상당했다. 그 당시엔 전집 류의 책으로 거실을 장식하는 게 일종의 유행이었다. 여튼 읽을 책이 많아졌으니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세익스피어, 톨스토이 전집을 비롯해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된다. 당시 숙부댁에 세입자 1가구가 살았는데, 그 집 자녀 가운데 나와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학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고등학교 다니던 그의 형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숙부댁 책 일부가 사라졌다. 당시엔 헌책을 내다 팔아 다소 돈을 마련할 수 있던 시절이다. 순간 옆방에 살던 고교생이 의심됐다. 그런데 불똥은 엉뚱하게 내게로 떨어졌다.

 

그날 저녁이었다. 퇴근한 숙부가 나를 불렀다. 아마 숙모에게 책이 일부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던가 보다. 이내 나를 채근했다. 그래서 내가 그런게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거짓말한다고 죽지 않을만큼 맞았다. 구타 당하면서 옆방 고교생이 그런것 같다는 심증을 말하고 싶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 물증 또는 목격한 바가 없어서 말하지 못했다. 물리력으로 항거하기엔 역부족이었고, 다른 무엇보다 숙부댁에서 숙식하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내 형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억울한 구타를 당한 이후부터 어떤 변화가 생겼다. 숙부가 세이코 시계를 사다주는 등 당시 내 신분에는 어울리지 않는 선물을 간혹했다. 아울러 옆방에 살던 또래 아이와 그 형이 나를 보면 뭔가 슬슬 피하며 미안해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제서야 저들의 작당임을 속으로 확신했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다. 그 이후 내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책읽기는 계속됐으나 싸움 잘하고 돈 잘쓰는 애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학교 공부는 점점 멀어져갔다.

 

요즘 미투 운동이 활발하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 가운데 한 방편이라 여긴다. 적폐청산 일환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다. 미투 피해 여성들에게 왜 성폭행 당할 때 거부하지 않고 뒤늦게 그러느냐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를 향한 명백한 2차 폭행이다. 위력에 의해 당할 수밖에 없는 여성 혹은 약자의 입장을 단 한 번이라도 고려한 후에 그리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차제에 배우 장자연 씨 사망과 관련, 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도 철저한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재벌, 언론, 정치권력 등에 의한 지속된 성폭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죽음으로서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고자 했던 그녀의 명예회복 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지위를 악용한 성폭력 범죄로 인해 숨죽이며 고통당하고 있는 피해자 혹은 약자의 짖찢기는 정신과 영혼마저 살해하려는 그 모든 경멸스런 작태는 또 다른 악일 뿐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