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14개월 일지 내용은?/정성태

시와 칼럼 2015. 5. 2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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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만든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첫 글이 실린 때가 2008년 2월 29일이다. 집안 청소와 이삿짐 정리에 관한 것이 골자를 이룬다. 이후에도 거의 일상사와 관련된 내용이거나 또는 봉화마을 소개 등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자신의 친형인 노건평 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던 12월부터 돌연 그의 글이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 이듬해인 2009년 2월 22일에야 재개된다. 이때 비로소 그가 정치인으로 돌아온 느낌을 갖게 하는 글이 게재된다.

 

그는 게시물을 통해 "생각이 정리되면 직업 정치는 하지 마라, (정치) 하더라도 대통령은 하지 마라는 이야기, 인생에서 실패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같은 날 또 하나의 글이 실리는데, "(이명박 대통령) 비판은 자유이고 야유도 할 수 있지만 아무런 사실도 논리도 없는 모욕적인 욕설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존중할 것은 존중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감정을 절제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0여일 가량 후인 3월 4일, 그는 거듭 '정치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정치를 하면 거짓말과 돈의 수렁, 사생활의 노출, 이전투구의 저주, 고독과 가난을 겪게 된다"며 "정치인과 시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치판 일각에서 더러 보게 되는 것의 나열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스런 점은,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얼마나 가난해졌느냐는 물음이다. 만일 진실로 그렇다면 노무현 재단 조성은 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우선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바야흐로 꽃 피는 춘삼월을 알리는 4월 7일, 검찰의 박연차 태광산업 회장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직접 겨냥하자 "사과드립니다"라는 글을 ‘사람 사는 세상’ 게시판에 올린다. 그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 사용한 것이며 검찰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힌다. 아울러 "송구스럽기 짝이 없고, 지금껏 저를 신뢰하고 지지를 표해 주신 분들께는 더욱 면목이 없다"는 내용으로 금품 수수에 대해 사실상 실토한다.

 

그러다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한 달 전 무렵인 2009년 4월 22일 ‘사람 사는 세상’에 의미심장한 글이 올라온다. 그로서는 세상에 공개적으로 밝힌 생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내용으로 퇴임 이후 시작한 14개월가량의 일지를 마무리한다.

 

다혈질적인 그의 성향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저 무렵에 이미 자살을 굳혔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부인과 자녀 등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의 최후 방어막으로서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개연성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불세출의 기상과 도전 정신으로 성취해 냈으나, 이후 권좌에 오르면서 우향우 길을 걷게 된 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시민사회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등장했던 프랑스 쟈코뱅 정권의 몰락과도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바라기는 이제 그를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놓아 주는 것도 고인에 대한 예의이자 도리라 여긴다. 특히 문재인, 이해찬, 유시민, 문성근 제씨 등을 비롯해 속칭 친노 정치인에게는 더더욱 뼈저리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가 이명박 정권에서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한결 맞도록 납작 엎드려 숨었던 그들이다. 그런데 무슨 염치와 낯짝으로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만 이용하려 드는지 참으로 불쾌한 생각 떨칠 길이 없다. 역사 앞에서 그의 공과가 사실 그대로 기록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