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문재인, 조선일보 방상훈과 화기애애?/정성태

시와 칼럼 2015. 4. 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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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표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의 단독 비밀 회동이 지난 3월 말 무렵에 있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분위기 또한 화기애애한 자리였다고 한다. 문 대표 자신의 보좌관마저 모르게 이루어진 만남이었다고 하니, 모종의 밀약이 있지 않고서야 굳이 그랬을까 하는 세간의 의혹이 깊은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그 둘 사이에 무슨 내막 깊은 모의가 있었던 것일까? 여전히 흑막에 가려져 있는 그들의 대화 내용이 몹시 궁금한 대목이다.

 

물론 정치인은 어떤 특정한 사람의 신분 및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국민 누구라도 만나야 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래서 고충도 듣고 또 다양한 여론 청취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역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에 있어 그러한 쌍방향 소통은 매우 중요하게 대두되는 덕목이다. 국민된 입장에서 그것을 잘하라고 국회의원을 뽑고 또 자신의 권한을 위임한다.

 

그러나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최소한 구별되고 또 가려져야 하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특히 그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조선일보가 어떤 집단인가? 우리사회의 올바른 방향성을 지속해서 왜곡하고 또 저해하기에 여념이 없는 대표적 황색 언론으로 낙인 찍혀 있다. 오죽했으면 적잖은 인구 사이에서 악의 축으로까지 지목되고 있겠는가? 그러한 점을 문재인 대표 자신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 여긴다.

 

그래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 그 시기와 장소 또 상황에 따라 대중에게 인식되는 각도는 확연히 구분된다. 가령 어떤 남성이 성매매 여성과 함께 커피숍에 있었다면 연인 관계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성매매를 제공하는 특정된 장소에 있었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문재인 대표와 방상훈 사장과의 만남 또한 그에 비할 수 있다. 떳떳한 회동이었다면 왜 굳이 비밀리에 만나야만 했던 것일까? 더욱이 즐거운 시간까지 보냈다고 하니 굳이 여러 설명이 필요치 않을 듯싶다.

 

우리 속담에 “참외밭에서 신발 끈 매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참외밭에서 도적질 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기에 생겨난 말일 테다. 그런데 그들 두 사람의 밀회를 두고 단순히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맨 것으로 여기는 국민은 별반 없는 듯하다. 특히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거대 야당 대표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처신이란 호된 비판이다. 어용 정치인으로 낙인찍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국민 다수인 서민의 삶은 날로 고통 가운데 내몰리고 있다. 불평등 구조로 인한 극심한 격차는 임계점을 넘어선지 오래다. OECD 국가 가운데 10년 넘게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동반 자살하는 참담한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노령 인구의 절반가량이 빈곤에 시달리며 굽은 허리로 온 종일 파지를 주워야만 연명할 수 있는 처참한 지경이다.

 

그뿐 아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 학생들이 캄캄한 바닷물에 그대로 집단 수장 당한 세월호 학살 만행이 발생한지 1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여태 어느 것 하나 진실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세월호 특별법마저 문재인 대표가 앞장 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빼자고 함으로서 무용지물로 전락됐다. 진실을 영원히 미궁으로 빠트리기 위한 문 대표의 속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박근혜 정권에 면피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종범 관계에 놓여 있다는 의구심을 낳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다.

 

이러한 제반 문제에 대해 그간 조선일보는 사실을 왜곡시키기에 여념 없는 보도 행태를 취해왔다. 걸핏하면 종북타령을 앞세워 우리사회에 만연된 온갖 사악한 구조를 당연시 여기도록 획책하는데 커다란 요인을 제공했음을 부인키 어렵다. 정부 발표는 무역 강국과 소득 3만불 시대 진입이 목전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전체 국민 대다수가 겪고 있는 삶은 갈수록 서럽고 고단한 눈물 가운데 처해 있다.

 

여기서 시계를 1980년 5월 18일로 되돌려보자. 당시 전두환 군부 세력에 의해 광주를 비롯한 호남에 온통 피바람이 불어 닥쳤다. 공수부대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몽둥이에 맞아 깨지고, 착검된 총칼에 찔리며, 쏟아지는 총알 세례를 받아야 했다.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숱한 사람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야 했던 참혹한 학살의 현장이었다. 어린 자식이 아비를 잃고, 노모가 자식을 잃었는가 하면, 청춘의 때를 살아야 할 이들의 생명이 꺼져 갔다.

 

당시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폭도들의 난동이라며 여론을 호도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이는 여전한 현재 진행형이다. TV 조선 출연자로 섭외한 패널을 통해 광주 시민과 호남을 폄훼하기에 온통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에 의해 발생한 난동으로 매도하는 흑색비방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철저히 강자의 편에 서서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을 짓밟는 간악한 도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대표, 그가 새정련 대표에 취임한 첫날 행보가 살인 독재자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였다. 오죽했으면 이승만 참배는 박정희마저 꺼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기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비밀리에 단독 회동까지 하였으니, 그가 향하고 있는 정치적 지점이 어떻다는 것은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기실 문 대표의 수구성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핵심 실세로 있을 당시 이미 그 정체가 속속 밝혀진 바 있다.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소신을 헌신짝마냥 팽개치고, 사악한 세력과 야합을 일삼는 그에 대해 역사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 집권 세력 앞에 아첨만을 일삼으며 온갖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일관하는 사이 다수 국민의 삶은 더욱 비참해지고 있다. 어찌 그를 거대 야당 대표라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한낱 창녀에게도 순정은 있는 것이고, 보통 사람에게도 신념은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표는 한낱 창녀 또는 보통 사람만도 못한 정치인인가? 그에게 던지고픈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