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한국 민중의 삶, 사육되는 돼지와 다를 바 없다/정성태

시와 칼럼 2014. 11. 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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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창살 안에 돼지 한 마리만 간신히 누워서 살 수 있도록 가둬서 사육하는 양돈 환경이 가히 충격적이다.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는 일어 설 수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서 그 어떤 자유로운 움직임도 없이 그저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살을 찌워야만 한다. 또 그 안에서 새끼를 낳고 젖을 물려 또 다른 식용 돼지로 키워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인간의 극한 탐욕이 그 얼마나 추하고 또 잔인한 것인지를 여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는 불행하게도 사람 사는 관계 속에 있어서도 매우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불편한 사실이다.

 

오늘 날을 일컬어 문명화 된 세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다수 인간의 삶은 여전히 궁핍하며 속박 당한 가운데 놓여 있다. 전제한 돼지의 일생과 비교해 결코 크게 나은 것이 없다. 국가 권력에 의해 제도화된 야만이 횡행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좁은 쇠창살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돼지가 죽지 않고 자본의 식탐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숨쉴 공간을 확보해 준 것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차이, 바로 그 때문이다. 하긴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선 어린 소녀들을 가둬서 애를 낳게 하고, 그 애들 장기를 적출해 밀매한다는 소식도 있다.

 

여튼 무한 질주를 향해 치닫는 썩은 자본과 잘못 결탁된 사악한 정치 권력의 포악성이 가열될 수록 인간의 삻은 결국 자본 증식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그를 충족키 위해 가해지는 혹독한 노동만 있을 뿐, 거기 그 어떠한 인간적 가치도 매몰되게 된다.

 

오늘 한국 사회 다수 민중의 삶이 과연 앞서 언급된 쇠창살 안의 돼지에 비해 도대체 얼마나 더 나은 환경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확신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우리 안의 가장 큰 불행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