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국회에 암약하는 간첩을 잡아라?/정성태

시와 칼럼 2013. 8. 2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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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음모 혐의로 현역 국회의원 신분인 이석기 의원실을 압수 수색하는 박근혜 정권의 광기어린 만행이 벌어졌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법원에 의해 무죄로 확정된지 불과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다. 아울러 국정원 사태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 "댓글 작업 불법이었다"라며 국정원 직원 스스로가 자신들의 범법 행위에 대해 토설하기 시작한 바로 이후이기도 하다.

 

내란음모란 형법 제 90조에 담긴 내용으로, 국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킬 것을 모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사법 살인으로 불리는 1974년의 '인혁당 사건'이다. 내란음모 혐의를 씌워 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은 후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서둘러 사형을 집행했다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억지로 조작된 사건이었는지를 극명하게 웅변하고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유신 치하에서 발생한 일로, 이후 2002년 9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인혁당 사건은 조작된 것이라고 조사하여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해, 2007년 1월 들어 사형 당한 8명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함께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 24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죄목은 북한의 사주를 받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죄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결성 등의 혐의가 함께 적용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이후 2004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21세기 백주대낮에 북한의 주체사상과 3대 세습을 옹호하는 남한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로부터 지령을 받고 남한 사회의 전복을 꾀할 목적으로, 그것도 국회의원 신분으로 침투해 암약한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더욱이 사정기관의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는 당사자들이 무려 130명이나 한꺼번에 같은 장소에서 그러한 모의를 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다.

 

이러한 정보 당국의 간악한 이면에는 집권 세력의 결정적인 도덕적 하자가 내재되어 있다. '인혁당 사건'이 그렇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또한 그렇다. 국정원 사태로 인해 피할 길 없는 벼랑에 몰린 박근혜 정권이 급기야 공안 정국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좌다.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의 부정 선거 개입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여기에 인구 사이에서 특검 요구가 거센 가운데 있다. 이를 모면키 위한 파렴치한 국면전환용 공작 정치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정권으로서는 국정원 사태에 대한 진실을 밝혀서 관련자를 처벌하고 또 국정원을 혁신적으로 탈바꿈시켜도 부족할 판국이다. 그런데 내란죄 운운하며, 오히려 단죄의 대상인 국정원 직원들이 국회에 대거 투입돼 현역 국회의원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는 만행 앞에서 아연 말문이 막히게 된다. 이는 단지 특정 국회의원에게 향하는 권력의 칼날이 아니라, 국정원 사태의 진실 규명을 원하는 전체 국민에 대한 권력의 폭거인 것이다.

희대의 부정선거를 획책했던,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으로 잘 알려진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내정되면서 어쩌면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1992년 당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되면 영도 다리에서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등의 발언과 함께 “검찰에서도 양해할 것이고, 경찰청장도 양해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또 관권 선거를 지시했던 인물로 대표적 공안통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정원은 왜 유독 이석기 의원을 겨냥한 것일까?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검찰에 의해 샅샅히 신상을 털어도 혐의가 나오지 않았던 그인데도 말이다. 우선 그가 종편 재심의에 대해 가장 앞장 선 인물이다. 극우 정치 세력의 앞잡이에 지나지 않은 종합 편성 채널의 폐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울러 야당지로 알려진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경향신문 등도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유시민 등의 농간에 의해 이석기 측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던 바 있다. 그만큼 야당 언론에 의한 진상 규명을 손쉽게 차단할 수 있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여기에 소위 말하는 조중동 매체는 알아서 공작 정치의 확대 재생산을 부추기는 전위부대로서 맹활약 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일테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 혹독한 독재 시절의 야만성이 거듭 작동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렇다고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것이 용인되거나 또는 통용될 것으로 여긴다면 이는 권력의 큰 오산이다. 아울러  이런 파렴치한 행태를 통해 국정원 사태의 본질과 그 엄중함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 또한 지나치게 어리석은 발상이다. 오히려 국민적 저항과 분노만 거듭 일깨울 따름이다.

결코 권력은 항구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정의와 진실의 심판대 앞에 놓인다. 이제 광장의 촛불이 박근혜 정권 타도 구호가 자연스레 나오게 되는 시점을 맞고 있다. 국민 다수의 순수 열정에 칼날을 견주는 바와 다름 없는 정권의 폭거 앞에, 박근혜 대통령 하야 구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구 사이에 치닫고 있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