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기타]

오랜 역사를 지닌 절터 '성주사지(聖住寺址)'...충남 보령

시와 칼럼 2011. 6. 1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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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9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사가 있던 자리이다.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부르다가, 신라 문성왕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주사라고 하였다. 산골에 자리잡고 있는 절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절과는 달리 평지에 자리하는 가람의 형식을 택하였다. 절터에는 남에서부터 차례로 중문처, 석등, 5층석탑(보물 제19호), 금당건물과 그뒤에 동서로 나란히 서있는 동삼층석탑, 중앙 3층석탑(보물 제20호), 서 3층석탑(보물 제47호)가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 하나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도 절의 북서쪽에 있다. 발굴조사결과 건물의 초석, 통일신라시대의 흙으로 빚은 불상의 머리,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와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주사는 당대 최대의 사찰이었으며, 최치원이 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신라 석비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자료출처 : 보령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충남 보령시 소재 '성주사지'에 대한 설명문

 

성주사지 5층 석탑(보물 제 19호)

 

 성주사지 5층 석탑에 대한 안내문

 

 제 자리에 놓여 있어야 할 거북상이 도난 당하고 없다.

 

 성주사지 석불입상

 

 성주사지 석불입상에 대한 안내문

 

 절터의 흔적으로 미뤄 볼 때, 사찰의 규모가 매우 웅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발굴 중에 있는 성수사지

 

 발굴된 기왓장

 

 발굴 중에 있는 성수사지

 

 성주사 낭혜 화상 백월보광탑비(거북의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성주사 낭혜 화상 백월보광탑비'가 국보 제 8호 임을 알리고 있다.

 

 성주사 낭혜 화상 백월보광탑비에 대한 설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