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양정씨(溫陽鄭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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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氏
본관은 옛 문헌에 210본 또는 247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오늘날 전하는 것은 동래(東萊)·연일(延日)·해주(海州)·진주(晉州)·하동(河東)·초계(草溪)·온양(溫陽)·경주(慶州)·청주(淸州)·봉화(奉化)·광주(光州)·나주(羅州)·서산(瑞山)·김포(金浦)·야성(野城)·함평(咸平)·청산(靑山)·장기(長?·영덕(盈德)·곤양(昆陽)·서경(西京) 등 30여 본이다.
역사적으로 명벌(名閥)로서의 지위를 누려왔으며 특히 조선시대에 동래정씨(東萊鄭氏)를 으뜸으로 연일·청주·온양·진주·하동정씨 등이 상당한 세력을 폈다.
정씨의 원조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의 6촌(六村) 중 자산(山) 진지촌(珍支村:本彼部)의 촌장인 지백호(智伯虎:佐命功臣)이다. 본피부락은 현재의 경주시 중심부에 있었으므로 정씨는 일찍부터 한반도 남단에 자리잡고 살던 선주민(先住民)의 후예임이 분명하다.
오늘날 정씨의 각 본관별 시조들은 모두 지백호의 원손(遠孫)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지만 그 혈연적 계보(系譜)를 가려낼 방도는 없다.
일반적으로 정씨는 한 혈손이며 그 중 경주정씨가 큰 집이 된다는 데에는 별로 이론이 없는 것 같다. 다만 동성이족(同姓異族)으로서 서산정씨가 있는데 그 시조 신보(臣保)는 원래 중국의 저장[浙江] 사람으로 송(宋)나라의 원외부(員外部) 벼슬에 있다가 나라가 망하자 고려에 망명해 온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高麗史)》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로는 의종 때 명신 습명(襲明), 그의 6대 손인 몽주(夢周), 의종 때 무신정변을 주동한 중부(仲夫), 예종 때 학자·문인이었던 항(沆)과 그의 아들인 《정과정곡(鄭瓜亭曲)》의 저자 서(敍), 고려 당대의 시객(詩客) 지상(知常) 등이 두드러졌으며, 그 위세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활짝 피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31명의 상신(相臣)과 751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1975년도 국세조사에서는 가구수 29만 8291가구, 전국 가구구성비 4.4 %로 249성 중 제5위였고, 85년도 조사에서는 42만 2220가구, 178만 648명으로 성별순위는 274성 중 역시 제5위였다. 본관별 내력과 주요 인물을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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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정씨】 고려 초의 학자 배걸(倍傑)을 시조로 한다. 그의 아들 문(文)도 예종 때 형부상서·정당문학 등을 지내며 문명을 날렸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광해군 때 온(蘊)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스승 인홍(仁弘:瑞山鄭氏)이 대북파(大北派)의 권신(權臣)이 되자 절교하였으나 인홍이 참형을 당하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 주었다고 한다.
10여 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생활 중에 지은 《망북두시(望北斗詩)》 《망백운가(望白雲歌)》는 잘 알려져 있다. 이 밖에 중종 때 윤겸(允謙), 선조 때 청백리 종영(宗榮), 영조 때 훈련대장을 역임한 여직(汝稷)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57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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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정씨】 시조는 신라 때의 안일호장(安逸戶長) 회문(繪文)이고, 그 후손이 고려 초 호장을 지낸 지원(之遠)이다. 지원의 아들 목(穆)은 좌복야(左僕射)를 지냈고, 목의 아들 항(沆)은 문종·인종 때 우사간·충청도안찰사 등을 지냈으며, 항의 아들이 《정과정곡》으로 유명한 서이다.
조선시대에 정승 17명, 대제학 2명, 문과 급제자 198명을 배출했는데 상신(相臣) 17명은 왕손인 전주이씨의 22명에 버금가는 숫자이다.
동래정씨는 지원의 6세에서 교서랑(校書郞:輔)파와 첨사공(詹事公:弼)파의 2파로 대별된다. 이들 2파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각각 여러 파로 분화하는데 첨사공파 중에서도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와 대호군파(大護軍派)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직제학공파의 파조(派祖) 사(賜:세종 때 예문관직제학)는 아들 5명, 손자 10명을 두었으며 그중 셋째 아들 난종(蘭宗)은 동래정씨 중흥의 조(祖)라 할 수 있다.
난종은 세조~성종 때 훈구파(勳舊派)의 중진으로 이조판서·우참찬을 역임하였고, 문익공파(文翼公派)로 불리는 광필(光弼)은 그의 둘째 아들이다. 그 밖에 중종 때 대제학을 지낸 사룡(士龍), 선조 때 우의정 지연(芝衍), 숙종 때 우의정 재숭(載嵩), 헌종 때 영의정 원용(元容), 정조 때 우의정 홍순(弘淳) 등이 있으며, 대호군파는 여립(汝立)의 모반사건으로 몰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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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정씨】 시조는 신라 때 간관(諫官) 종은(宗殷)이며 그 후손인 습명(襲明)을 중조(中祖)로 하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극유(克儒)를 중조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가 있다.
이 양파는 시조를 같이 하면서도 그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서로 촌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지주사공파에서는 몽주(夢周)가, 감무공파에서는 철(澈)이 잘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배출한 상신(相臣) 5명과 대제학(大提學) 3명 가운데 유성(維成:현종 때의 우의정)만이 몽주의 후손일 뿐, 홍명(弘溟:인조 때 대제학)·호(澔:영조 때 영의정)·우량(羽良:영조 때 우의정) 등은 모두 철의 집안이다. 이 밖에 지주사공파로는 유성의 손자인 양명학의 거성 제두(齊斗), 선조 때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을 일으킨 대임(大任), 효종 때 학자 극후(克後), 고종 때 산수화에 능했던 문승(文升) 등이 있고, 감무공파로는 고려 공민왕 때 오천군(烏川君)에 봉해진 사도(思道)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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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정씨】 시조는 고려 신종 때 전법정랑(典法正郞)을 지낸 숙(肅)이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인물로는 무신정변을 일으켜 8년 동안 무단정치를 폈던 중부(仲夫)를 들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태종·세종 때 호조판서 등을 지낸 역(易), 그의 아들로 세종 때 형조참판을 지낸 충경(忠敬), 그의 손자로 단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종(悰) 등이 있다.
또 연산군 때 난세(亂世)를 예견하고 종적을 감추어 버린 일화의 주인공 희량(希良)은 역의 현손으로 시문에 능하고 음양학에도 정통했다.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대장으로 활약하고 영흥부사·길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부(文孚)는 역의 5대 손인 부사 신(愼)의 아들이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는 60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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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정씨】 동성동본이면서도 족보가 다원화되어 있어서 전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진주정씨의 본고장인 경남 진주(晉州)에서는 강(姜)·하(河)·정 3성(姓)을 3대 성으로 치고 있지만, 그중 진주정씨에는 ‘진주8정(八鄭)’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 시조와 계통을 달리하는 8파가 있다.
조선시대에 상신(相臣) 1명을 포함하여 문과 급제자 59명을 배출했으며, 그 대표적 인물은 조선 문종 때 좌찬성을 지낸 분()을 들 수 있으며, 대표적 학자로는 선조 때 경세(經世)가 있고, 세종~세조 때 충청도관찰사와 중추원지사를 지낸 척(陟)은 특히 글씨에 능하였다.
성종 때 효자와 청백리로 유명한 성근(誠謹)은 척의 아들로서, 성근 집안은 대대로 효행이 이름났다. 그 밖의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순사한 사제(思悌), 숙종 때 문신 필달(必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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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정씨】 고려 명종 때 서북면병마절도사·형부상서 등을 역임한 세유(世裕)를 시조로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상신(相臣) 1명, 대제학 1명 등 문과 급제자 58명을 배출했다. 조선 전기에는 세종 때 《농사직설(農事直說)》을 편찬한 초(招), 세종~세조 때 학자 인지(麟趾), 세종 때 수충(守忠), 성종 때 여창(汝昌) 등이 특히 돋보이는 인물들이다.
중기에는 광해군 때 택뢰(澤雷),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봉수(鳳壽)·기수(麒壽) 형제, 당대의 뛰어난 서예가였던 경흠(慶欽)과 충엽(忠燁), 지리학자로 《팔도도(八道圖)》를 제작한 상기(尙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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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정씨】 고려시대 호부상서를 역임한 보천(普天)을 시조로 한다. 조선시대에는 순붕(順朋:명종 때 우의정)·만석(晩錫:순조 때 우의정) 등 2명의 상신과 문과 급제자 43명을 배출하였다.
그 밖에 정조 때 시파(時派)의 거두였던 민시(民始)는 순붕의 9대 손이며, 현종 때 학자로 시문과 서예에 뛰어났던 두경(斗卿)은 현손이고, 정조 때 예조판서 등을 지낸 창순(昌順)은 8대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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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정씨】 정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신라 초기 6부 가운데 본피부(本彼部:山 珍支村)의 촌장이던 지백호(智伯虎)라는 것이 통설이며 이른바 범정씨(汎鄭氏)의 ‘큰 집’격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씨상계세보(鄭氏上系世譜)》에 따르면 경주정씨의 시조(중시조) 진후(珍厚:고려 平章事)는 지백호의 40대 손이 된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2명을 배출하였는데, 그중 희계(熙啓)가 잘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 장렬하게 전사한 발(撥)은 희계의 5대 손인 군수 명선(明善)의 아들이다.
이 밖에 세종 때 좌찬성이 추증된 지년(知年), 명종 때 성리학의 대가 지운(之雲)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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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정씨】 시조는 고려시대 보승별장(保勝別將) 극경(克卿)이다. 조선시대 역대 인물로는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탁(擢), 선조 때 좌찬성을 지낸 곤수(崑壽),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탁(琢), 광해군 때 대사헌을 지낸 구(逑) 등 당대의 거유(巨儒)·명신이 있다.
탁은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어 도전(道傳)과 함께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하였으며, 곤수는 대명(對明) 외교의 1인자로 청백리에도 올랐고, 구는 예학자(禮學者)·문장가로 산수·병진(兵陣)·의약·풍수에 능통하였으며, 장현광(張顯光)·심지택(沈之澤)·허목(許穆) 등이 그의 제자였다.
탁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이순신(李舜臣)·김덕령(金德齡) 등 명장을 발탁하였고, 이순신을 감옥에서 구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9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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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정씨】 시조는 고려 말 밀직부사를 지낸 영찬(英粲)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태조 때 개국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도전(道傳)과 그의 증손으로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낸 문형(文炯)을 들 수 있다.
도전은 조선의 기틀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도읍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경복궁을 비롯한 궁전·궁문에서부터 도성의 8대문, 성내(城內) 48방(坊)의 이름을 짓고 《고려사》를 편찬하였으며 성곽의 수축, 역참(驛站)의 설치 등 여러 가지 규모와 시설과 정책이 그의 머리에서 나와 그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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