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뉴스]

김대중 동경납치 생환 35주년 기념식

시와 칼럼 2008. 8. 13. 00:06
728x90

생환 35주년 기념행사 김대중 전 대통령 말씀 전문

일시 : 2008년  8월12일 화요일 오전 11시30분
장소 :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강당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35년이 됐는데 잊지 않고 이와 같이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시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 드려 마지않습니다. 저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기쁜 일도 있었고 특별한 경험도 있었지만 제가 납치되어가지고 바다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난 일 이상 저에게는 일생에 큰 감동을 준 그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제가 납치되어 바다에 던져지기 직전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제 눈은 완전히 가려져 있었지만 머릿속에 확연히 긴 소매가 달린 옷을 입고 하느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저는 하느님의 옷소매를 붙잡고 ‘주님! 제가 우리 국민들을 위해 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를 제발 살려주십시오.’하고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사이에 '펑!' 소리가 나면서 거기 있던 정보부원들이 '비행기다!' 하고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계속 ’펑‘ 소리가 나고 배는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그렇게 얼마 있으니까 젊은이 한 명이 뛰어 들어와 ‘김대중 선생이 아니십니까?’ 그래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까 ‘나도 부산에서 선생님한테 투표했는데요.’그러더니 제 귀에 대고 ‘이제 산 것 같습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후로 8월 8일 납치되어 13일까지 6일 만에 겨우 집으로 돌아와서 생환되었는데 방금 제가 말씀드린 이 내용은 생환 당시 집에 들어오자마자 얼마 후 기자들이 들어왔는데 그 앞에서 제가 하느님의 경험을 말씀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 신문을 보면 역력히 나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고생도 했습니다. 공산당에 1번 독재정권에 4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 반 감옥살이도 했고 약 20년 동안 망명, 연금, 감시의 생활을 해왔습니다.

바로 이 건물 자리에 정보부원들이 입주해서 우리 집과 바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서 도청을 하는 바람에 누구와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말을 하면서도 결국에는 일상적인 일 외에는 흑판 갖다 놓고 얘기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저와 행동을 같이 했던 동지들과 저를 지지한 국민들이 특별히 박해를 받고 엄청난 수난을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제가 지금 받고 있는 모든 영광을 그러한 고통을 겪은 동지들과 우리 국민에게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안 희생이나 고통에 크게 보상받고 너무도 과중한 영광을 입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런 보상을 받지 못한 동지들이 얼마나 많으며 또 가족을 희생시키고도 국가적으로 아무 보상도 못 받고 고난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유가족, 민주인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면서 항상 걱정은 하지만 아무 것도 못 한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뭔가 생각을 더 해봐야겠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한 가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한 번도 국민을 이탈하거나 국민을 머리에서 잊어버리고 내 멋대로 행동하거나 내 멋대로 정치적 판단이나 중대 문제를 결정하는 그런 경우는 없었다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목숨을 걸고 국민의 편에 섰다는 것을 저는 동지 여러분께 말할 수 있습니다.

신군부 사람들이 저에게 사형선고를 해 놓고 자기들과 협력하면 살려 준다 안 하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도 저는 ‘당신들과 협력하면 살겠지만 국민을 배신하니 못 하겠다. 내가 당신들과 협력 안 하고 죽는다면 나는 국민과 역사 속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영원한 삶을 택하겠다.

나를 죽이고 싶다면 죽이라’고 얘기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아온 인생에 한없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보면서 정말 잘 견디고 잘 이겨내 주었다고 스스로 생각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동지들이 협력해준 덕택이고 우리 국민과 많은 사람이 저를 버리지 않고 박해 속에서도 저를 지지해 주었던 은혜라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서 그 분들에게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저는 며칠 전 KBS 1TV <일요진단>에서 건국 60년 동안 우리 민족에 대해서 사자성어로 표현하다면 뭐라고 말하겠냐는 질문에 생각하다 ‘칠전팔기’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느 정도 맞은 표현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은 수나라, 당나라가 침입했을 때 고구려가 싸워서 결국 이것을 격퇴했습니다. 몽고가 쳐들어올 대도 끝까지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지을 때까지 1231년부터 1270년까지 싸웠습니다. 40년을 싸운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에 대해서 나라가 폐망했지만 독립지사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 나가서 투쟁했습니다. 세계 식민지의 역사 중에 식민지가 되는 그날부터 해방된 마지막 날까지 일관되게 임시정부를 유지하면서 해외에서라도 무장투쟁을 한 민족은 한국민족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이런 민족 이제 21세기는 우리 민족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는 산업화에 늦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보화에 앞서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은 높은 교육수준 지적인 국민성, 그리고 모험심 이런 것이 오늘날 정보화를 이룩해서 세계 속에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이 한편으로는 사업화를 발전시키면서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수없는 사람이 광주를 위시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민주주의하고 교육수준 높고 용감한 이런 속에서 우리 문화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일본에서 한류로 반영되고 중국에서 하루 저녁에 약 1억 명의 사람의 한국의  TV 드라마를 보는 이런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제 한류는 동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유럽까지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을 가지고 있냐 도대체 4대 강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대 강국 속에 끼어 있으면서도 자기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련이 오면 다시 일어났습니다. 국토가 분단되니까 우리는 남쪽이라도 정부를 세웠습니다.
공산군이 침략해 오니까 부산가지 밀려서 싸우면서 격퇴했습니다. 독재자가 우리를 지배하니까 힘없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일어서서 싸우고 국민이 지지하고 이렇게 해서 민주주이를 찾아냈습니다.

이제 세계에서 2차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가 약 150여 개국인데 그 중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투명한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고 사회보장도 어느 정도 발전된 나라가 한국뿐입니다.

세계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찬양하고 세계의 신생국가들은 다 한국을 모범국가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이 해 내고 우리 국민이 해낸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국토가 분단된 상황에서도 결코 통일을 잊지 않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 부르면서 결국 6.15 민족화해를 해서 냉전의 시대로부터 화해협력의 시대로 출발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조금 나쁘고 있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서 이제 남북관계는 결코 다시 옛날의 냉전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민족은 엎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눕히면 다시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 칠전팔기를 한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지금 아주 막힌 지경에 있지만 크게 보면 남북관계는 상당히 전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항상 사물을 볼 때 멀고 넓게 보는 망원경으로 보는 안목과 가깝고 깊게 보는 현미경으로 보는 안목 두 가지를 가지고 잘 조화해서 봐 나가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한 일이 있습니다.

6자회담은 성공할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과 내가 해 놓은 북미간 직접대화 북한의 핵과 미사일 포기하는 대신 주고받는 협상 거의 성공시켜 놨는데 부시 시대로 들어서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 즉 ‘클린턴이 한 것은 다 안 된다’ 이런 식으로 결국 6년 동안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대결했습니다. 무리한 일을 하기 때문에 성공을 못했습니다. 성공을 못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북한이 다시 NPT에 탈퇴했습니다.  IAEA 감시요원을 추방시켜 버렸습니다. 장거리 모라토리엄을 깨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마침내 핵무기 실험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미국은 대응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전쟁을 하려니 지금 그러한 실력이 없고 일본과 함께 경제봉쇄 했지만 별 성과가 없고 한편으로는 미국 내에서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니까 부시의 그런 정책을 반대하고 부시 대통령도 임기 말이 되니까 뭔가 성공을 해야 하는데 한반도에서 그나마 할 수 밖에 없고 이런 등등이 합쳐서 지금 부시가 정책을 대전환했는데 그것이 바로 클린턴 대통령과 내가 하던 정책인 햇볕정책입니다.

햇볕정책은 서로 대화하자 그래서 문제가 있는 것은 같이 대화로 풀자 평화적으로 풀자 그리고 결과는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공동승리의 결과를 가져오자 이것이 바로 햇볕정책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나에게 햇볕정책을 설명해 달라고 해서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우리는 당신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겠다. 당신이 앞장서서 하라. 우리가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시가 들어가서 안 돼요.

나는 대통령 임기의 반은 클린턴과 보내고 반은  부시와 보냈는데 부시와는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가면서 부시 대통령도 나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2002년 2월에 서울에서 같이 긴 시간 대화를 했습니다. 내가 부시 대통령에게 얘기했습니다.

당신이 부시 대통령과 얘기를 안 한다고 하는데 당신네가 가장 존경하는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마라고 해 놓고 대화를 했다. 대화는 친구하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이 되면 악마하고도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왜 안 한다고 하냐.

그리고 어떤 협상이고 주고받는 협상 아니면 네가 먼저 하면 내가 하겠다는 그런 협상을 성공한 예가 어디 있냐. 하면서 얘기를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납득이 갔어요. 그래서 기자회견장에서 그 때 북한 정권을 교체시킨다고 할 때인데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 그 때는 그것이 아주 중요한 때 일이었습니다.

전쟁을 막는 그리고 북한과 대화하고 식량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제2차 핵위기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부시 대통령은 아무 얻은 것이 없이 실패만 거듭하다 이제 클린턴과 제가 말한 그런 방향으로 돌아섬으로서 이제 성공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나는 부시 대통령이 늦게나마 이렇게 태도를 변경해 준 것은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고 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6자회담은 앞으로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북한과 미국은 국교를 할 것이고 그리고 6자회담에서 이루어진 얘기되고 있는 동북아 안보체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내세운 ‘4대국 한반도 평화보장’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4대국에 남북을 합친 것이 6자회담입니다. 이런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제 남북은 이제 서로 큰 협력의 단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북한에 가서 공동으로 경제발전을 시키면서 우리도 큰 혜택을 보게 됩니다. 북한이 앞으로 현재는 가난하지만 경제적 잠재력이 아주 큽니다.

유럽 국가들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웨덴 이런 나라들이 북한 경제적 진출을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내다본 북한의 가치가 뭐냐 첫째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습니다. 텅스텐, 마그네사이트, 동, 금, 석탄, 우라늄 등을 풍부하게 있습니다. 둘째는 북한의 우수한 관광자원이 있습니다.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등 세계적인 관광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관광객들이 다 돌아다녔지만 그 동안 북한은 못 가지 않았습니까. 관광은 미 개척지역입니다. 여기에서 북한은 큰 관광 붐이 일어날 것입니다. 셋째는 노동력입니다. 북한의 노동력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가장 저렴한 노동력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북한이 앞으로 SOC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관계가 개선되면 일본과 국교 정상화해서 100억불에 달하는 전쟁배상금을 받을 수 있고 국제적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이렇게 하면 북한은 철도, 항만 등 SOC를 개발하면 거기 들어가자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지금 남쪽에서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데에 우리가 개입하면 우리는 거리도 가깝고 말도 통하고 문화도 같기 때문에 한국이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잇습니다.

우리의 중소기업이 사는 길은 북쪽으로 나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철도를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그런 ‘철의 실크로드’를 열면 지금 한국에서 태평양족의 물류 거점이 되어 일본, 미국의 물자를 이곳에서 실어 나르면 한국도 큰 혜택을 보고 북한도 큰 덕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반도라고 하지만 반도는 육지로도 가고 바라로도 가야 하는데 육지로 못 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몽고나 시베리아가 자원의 보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가 석유, 가스 등 노다지판인데 우리가 지금 거기 끼어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육지가 막혀서 제대로 가지 못 가고 있습니다.

기차로 간다면 파리, 런던까지도 갈 수 있고 기차로 간다면 바다로 가는 것보다 30% 정도 임금이 싸고 시간이 단축됩니다. 우리가 잘 시대에 대응해 나가면 우리는 큰 새로운 ‘한강의 기적’이 이제 ‘압록강의 기적’의 시대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지금 급격히 돌아가는 한반도의 정세 북미관계가 접근해 가는 상황, 일본과 북한이 국교하려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밀려나지 않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북한은 뒷바람을 타는데 우리는 앞바람을 맞아서 견디지 못하는 어려운 지경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고 앞으로도 한 층 더 나라를 위해서 노력하는 가운데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 중 많은 고초를 겪은 분들이 있지만 우리들이 고초를 겪을 때 국민이 우리는 도와주면 얼마나 힘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국민이 이해를 못하고 일부 언론이나 여당에서 군사독재자들이 하는 대로 파괴분자, 좌파, 빨갱이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매도할 때 얼마나 슬프고 기가 죽었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저는 여기서 우리 국민께 간절히 간절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인을 버리지 마시오. 그리고 악한 사람을 돕지 마시오. 그것을 해 주지  않으면 나라가 잘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말씀을 제발 명심하셔서 여러분 스스로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의롭게 산 사람 도와주고 악하게 산 사람 돕지 않아야 합니다.

국민이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정치도 잘 되고, 경제도 잘 되고, 사회도 잘 되고, 남북관계도 잘 됩니다. 이러한 정신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 그런 국민적인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그 동안 여러분의 저에 대한 많은 사랑과 지원에 감사드리고 저희 내외에 대해서 큰 격려 해 주신 것을 앞으로도 계속 잊지 말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내외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루도 헛되지 않고 민족을 위해서 사랑하는 국민을 위해 살자고 그러한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바라면서 감사를 드리고 저의 말씀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본이미지보기

 

원본이미지보기

 

원본이미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