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현대시의 형이상학을 확장한 것으로 평가받는 석연경 시인이 프랑스어 시선집 『황금 사원의 숲』(La forêt du temple d’or)을 펴냈다. 프랑스 문인 장-피에르 폴락(Jean-Pierre Paulhac)이 번역을 맡았으며, 파리 소재 에디시옹 뒤 씨뉴(Ed du Cygne)에서 출간되었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발간되어 더욱 의미가 있다. 서문에는 석연경 시의 미학적·철학적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시인 석연경의 시 세계는 하나의 근원적 질문으로 수렴된다. “존재는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귀환하는가.” 이 철학적 명제는 공간과 이미지, 침묵과 빛의 구조를 통해 구현되는 시적 사유의 방식이다. 시집 『정원의 우주』를 비롯한 기존 작품들은 자연·우주·정원·사원이라는 상징적 장치를 매개로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초월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해 왔다. 『La forêt du temple d’or』은 이러한 시 세계를 국제 문학 공간으로 확장하는 작업으로 의미를 지닌다.
석연경은 우주적 상상력과 정원 미학을 결합해 독자적인 형이상학적 서정을 구축해 온 시인이다. 자연을 존재론적 질문이 생성되는 사유의 장으로 확장해 왔다. 별, 숲, 바다, 사원, 빛과 어둠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상징이다. 이것은 인간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질문의 장치다.
대학에서 문학과 시 창작을 강의하며 동서 시학을 연구해 온 석연경은 한국적 사유의 바탕 위에 프랑스 상징주의 등 세계의 다양한 문학을 연구했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 강의를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와 문화원 등에서 지속적으로 강의하였다.
석연경에게 정원은 세계를 압축한 형식이며, 존재가 스스로를 사유하는 공간이다. 나무는 시간의 축으로 서 있고 꽃은 찰나의 빛을 태우며 돌은 침묵을 응축한다. 물은 흘러가며 기억을 품는다. 정원은 외부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깊은 내부다. 자연은 재현되지 않고 감응된다. 동양적 정원 미학과 서구 형이상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세계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체험의 장으로 변모한다.
별과 은하, 빛과 어둠은 석연경 시의 핵심 어휘다. 석연경 시에서 우주는 존재의 은유적 공간이기도 하다. 별은 고독의 표식이며, 빛은 기억의 잔광이고, 어둠은 침묵의 심연이다. 이 우주적 스케일 속에서 석연경 시인은 인간과 지구상 존재에게 오히려 숭고함을 발생시킨다. 석연경 시에서 우주는 질문의 확장 장치이기도 하다.
석연경 시인의 작품에는 무상, 인연, 윤회의 사유는 존재의 조건을 관조한다. 삶은 붙잡히지 않는 흐름이며, 죽음은 단절이 아닌 이행이다. 이 태도는 보편적 인간성으로 확장된다. 존중과 수용, 타자에 대한 개방은 조용한 울림으로 제시된다.
석연경의 시어는 압축된 이미지와 여백이 특징이다. 감정은 응축된다. 침묵은 가장 밀도 높은 언어다. 때로는 형이상학적 어휘에서 벗어나 일상적 표현을 삽입함으로써 감정의 현실성을 환기한다. 추상과 구체의 경계 위에서 시는 긴장과 균형을 유지한다.
이번 프랑스어 시집 『La forêt du temple d’or』에는 장-피에르 폴락의 서문이 수록됐다. 그는 “석연경의 시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수줍은 비밀의 사원에 발을 들이는 일”이라고 평했다.
아울러 바다의 호흡, 산의 윤곽, 사원의 상징을 언급하며 한국적 문화적 뿌리를 강조하는 동시에, 이 시 세계가 보편적 인간성으로 확장된다고 분석했다. 보들레르적 대응의 감각, 베를렌의 음악성, 아폴리네르의 기억의 파편, 랭보적 대담성까지 언급하며 동서 시학의 공명을 짚었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이 공명하는 미학적 지점이라는 평가다.
석연경의 작품은 자연을 존재론적 공간으로 확장하고, 철학적 사유를 보편적 인간성으로 전환하며, 절제된 언어를 통해 형이상학적 깊이를 구현해 왔다. 석연경 시세계에서 여백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고독과 기억, 사랑과 운명을 다시 읽게 한다. 석연경 시인의 우주적 시에서 우주적 스케일은 정원에서 우주로 확장되고, 침묵을 지나 존재의 근원으로 향한다. 석연경의 시는 한국 현대시가 도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형이상학적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석연경은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 소장이다. 대학 및 각 기관에서 문예창작 및 인문학 강의 등을 한다, 『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 『푸른 벽을 세우다』, 『탕탕』, 『정원의 우주』 등 다섯 권의 시집과 시평론집 『생태시학의 변주』가 있으며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그 외 사찰 시사진집 『둥근 거울』, 힐링 잠언시집 『숲길』, 시선집 『우주의 정원』, 시사진산문집 『시와 함께하는 순천정원문화』 등을 펴냈다.
* 필자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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