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후진 사회, 병든 민낯, 야바위 세상/정성태

시와 칼럼 2017. 12. 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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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는 국민적 심사가 적잖이 우울할 듯싶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기 위한 각종 모임과 행사 이면에, 적잖은 안타까움과 슬픔을 자아내는 일도 발생하고 있어서다. 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 추락 사고 및 선로 작업 중 들어오는 지하철에 치여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등 불운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건물 화재로 무려 29명의 생명이 한꺼번에 죽음을 맞는 참극을 빚기도 했다. 따지고보면 이 모두가 사람보다 돈을 우위에 뒀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다.

 

그런가하면 취업 준비 중이던 19세 여성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게 된 가슴앓이다. 그녀는 근무 중 끼니 때가 되면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음식을 사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국물 있는 음식을 받칠 요량으로 무심결에 20원짜리 소형 비닐봉투 2장을 바닥에 깔고 사용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단됐다. 그녀가 편의점에서 일한 시간은 총 53시간인데, 받은 돈은 고작 26만3천원 정도였다. 이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5천원 가량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녀는 최저임금을 적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에 앙심을 품은 점주가 CCTV를 돌려 소형 비닐봉투 2장 사용한 것을 빌미 삼아 절도범으로 신고한 것이다.

 

그녀는 절도 혐의로 신고가 접수됐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이후 집 앞까지 쫒아온 순찰차로 지구대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그녀는 경찰에 붙들려 가면서 얼마나 서러운지 눈물밖에 나지 않았다고 한다.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생활 전선에 나섰던 19세 어린 여성이 겪었을 공포심은 어떠했을까?

 

한편 다른 유형의 절도죄로 벌금 전과자가 된 어느 대학생 얘기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려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월급이 몇달 째 밀리며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그는 손님들이 받지 않고 두고 간 쿠폰을 모은 것으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을 사먹으며 어렵게 끼니를 해결했다.

 

그렇듯 밀린 월급 때문에 생활고를 겪던 대학생이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을 신고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주유소 사장이 그를 절도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대학생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청년들이 이래저래 멍들고 있는 한국사회 현주소다.

 

그런데 수천억 단위의 국방 비리를 저지른 자들은 태연히 생계형 운운한다. 아울러 온갖 형태의 천문학적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자들 또한 대체로 집행유예 또는 무죄로 줄줄이 풀려나는 기막힌 현실을 살고 있다. 정작 생계형의 사소한 실수 혹은 잘못에 대해서는 야박하고 가혹하기 이를데 없는, 그야말로 빛깔만 좋은 세계 10위권 대한민국의 병든 민낯이다. 야바위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