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거듭 김대중이 그리운 것은/정성태

시와 칼럼 2014. 9. 18.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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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진실로 그리운 이름이다. 물론 그에게도 어찌 흠결이 없으랴만, 돌이켜 보건데 우리 현대사에서 그만한 지도자도 드물다. 그의 삶 자체가 역사의 거대한 산맥이요, 도도한 장강이 되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 보다 높게 평가되고 있는 개탄스런 현실이 서글플 따름이다.

여기서 어쩌면 새정련이 노정하고 있는 심각한 어용성으로 인해 그가 더욱 사무치게 그리운지도 모를 일이다. 제 1야당의 무책임, 무기력, 무능력이 눈에 훤히 보이는 정국이다. 도대체 무슨 큰 약점이 잡혀 있고 또 어떤 거래가 있기에 그러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바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새정연의 모습을 보며 아마 통곡할 것이다. 5.18 영령들, 그리고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숨져 간 숱한 이와 함께 가슴을 쥐어 뜯을 게다. 거기 오늘을 사는 이 땅의 민초들이 쏟는 피눈물 소리와 함께 천지를 휘돌고 있다.

야당을 이끌던 시절, 굳이 동원하지 않아도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한 청중이 구름떼로 몰렸다. 군부 독재 세력에 의한 살해 위협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끝내 민중과 함께 그들의 호곡을 대변했다. 눈시울 붉히며 흐느끼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었으랴.

박근혜 정권, 비록 유신의 총칼은 들지 않았지만 국민에 대한 탄압은 더욱 교묘하고 정교해졌다. 어용 야당인 새정련이 이를 부추기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김대중의 이름은 차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은 차리면서도, 정작 그의 정신은 실종되고 없다. 

이는 사실상 김대중에 대한 능멸이다. 공의와 진실을 향한 그의 투철한 사명감과 불굴의 의지를 무참히 짓밟는 패륜적 만행이다. 이에 대해 아니라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그 얼마나 있으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