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똘레랑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의 독선/정성태

시와 칼럼 2013. 9. 18.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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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 이는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 출신 문학가이자 계몽주의 철학자인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를 규정하는 유명한 말이다.

설혹 그의 사상적 기반에 대해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그에게서 일관되게 흐르는 관용의 미덕인 똘레랑스적 사유에 대해서는 다른 이의가 없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것은 가시적인 것 이면까지를 총괄하는 영혼의 심안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를 작금의 우리 정치 상황과 비교해 보면 격정적인 시사점을 낳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강압에 의한 일방통행 식 국정운영이 그렇다. 거기 정치는 갈갈이 찢겨 실종되고 정권에 반하는 그 어떠한 정책과 사상의 자유 또한 핍박 받는 제왕적 통치만 자리하고 있다. 국민 일반을 향해 노예가 되기를 강제하는 숨 막히는 나날에 다름 아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 회동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부정선거 개입은 과거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는 다시 말해 국정원의 부정선거 개입에 대해서는 사실로 자인한 셈이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국정원이 크던 작던 관여했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헌 문란에 해당되는 관련 범죄 사실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서 그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또 관련자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했어야 옳다. 그리고 만일 대통령 자신이 알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한 수혜자로서 사과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아울러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에 대한 혁신 의지를 피력했어야 국가 최고통수권자로서 갖는 최소한의 염치인 것이다.

그런데 애초 예상했던 바대로 박 대통령의 언어는 철저히 수첩적이고 또 건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향후 정치 일정 또한 그 어떠한 기대마저 할 수 없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만 횡한 마음의 거리를 배회한다. 아울러 더욱 우려스런 점은, 국정원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민심을 향한 무차별적 폭압이 뒷따를 것이란 칠흑같은 전망이다. 유신 시대의 악몽이 고스란히 재현될 개연성이 높다란 점이다.

당초 그러한 조짐이 분명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 죄목으로 덧씌워 구속시킨 것이 단초다. 그도 모자라 국정원 사태를 철저하게 수사 지휘하던 채동욱 검찰총장마저 치졸한 방법으로 찍어내는 행태를 통해 거듭 확인되었다. 그에 따른 여론이 악화되자, 채 총장의 사표 수리마저 미룬 체 관제 언론을 통한 모욕주기에 여념이 없다. 향후 그보다 더한 무슨 간악한 짓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캄캄한 생각을 갖게 된다.

사태가 이런 지경이니,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검찰 조직마저 박근혜 정권을 향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이래서는 국가의 밝고 탄탄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관용과 배려는 차치하고라도, 법치주의의 원칙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그 무슨 민생인들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한낱 뜬구름에 불과할 따름이다.

거짓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을 말하게 되고, 그도 적절치 않으면 여론을 왜곡 조작하는 공작정치를 자행하게 된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잡아 가두고 끝내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게 된다. 지금 박근혜 정권에 의해 그러한 만행이 진행 중에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권의 말로는 유사 이래 한결같이 처참한 종말을 고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교훈이기도 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이내 여론은 진실을 찾아 제 자리를 잡게 될 것이고, 거기 권력의 독선에 대한 극심한 저항만 따르게 될 뿐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