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시집]

밤에 전하는 바람/정성태

시와 칼럼 2012. 3. 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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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전하는 바람

 

 

아무도 오지 않는다

나의 밤은

다만 익숙해진 부엉이처럼

솔밭 이곳 저곳을 넘나드는

독존의 영역만이 고집스레 오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묘지의 모퉁이에 앉아

죽은 자의 슬픈 전설을 듣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어둠 짙은 거리에 서서

떠난 자의 바보스러움을 한탄하기도 한다

 

하얗게 타고 있다

나의 밤은

선명한 나이테를 헤아리듯

추억의 시공을 반추하며

뇌세포가 일제히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비애의 수분을 받으며 돋아난 신록

군상의 나체를 희롱하던 광기어린 태양

처량히 쓰러진 고엽은 바람에 떠밀리고

겨울은 상흔을 새기며 연륜으로 쌓여만 간다

 

꿈이 살지 않는다

나의 밤은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허무한 진실 앞에

두려운 가슴만 비정히 걸어 잠글 뿐

반란의 역사는 진리인양 추락하지 않는다

오직 믿을 수 있는 존재의 궁극은

모든 사물의 교감과 이치의 공감도

기실 번거로운 구속이며 영속하지 못하다는 것과

또한 차디찬 고독과 소멸의 확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깨어나야 한다

나의 밤은

사랑하는 이의 체온을 매만지며

찬연히 터오를 여명에 얼굴 내밀고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손 흔들어야 한다

흩어진 것은 흩어진 대로 내어 쫒고

모아진 것은 모아진 대로 거두우며

만추의 끝날까지 따스한

차곡차곡 두터워지는 사랑으로만 엉키어야 한다

 

 

詩 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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