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뉴스]

정지창/과거로의 회귀

시와 칼럼 2008. 6. 2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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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의 회귀


                                                          정 지 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 분)가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울부짖는 이 대사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순진무구했던 스무 살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영호의 절규는 때 묻고 지친 우리 모두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이 답답하고 힘겨울수록 우리는 좋았던 시절,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IMF를 거치면서 먹고살기에 지친 국민들이 7, 80년대의 고도성장시대를 재현하겠다는 이명박 후보의 약속에 기대를 건 것도 일종의 과거 회귀 욕구의 투사일 것이다.

언론장악, 토건사업, 조사압력 등 시대착오적 정책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도 실은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신문들의 잘 나가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의 표현에 불과하다. 탤런트 이덕화가 이명박 후보에게 “각하, 힘내십시오!”라고 뜬금없이 충성 맹세를 한 것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타는 등 그가 잘 나가던 80년대식 연기일지 모른다.

「박하사탕」의 영호가 시간을 거슬러 ‘좋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영화화면 속에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거로의 회귀를 현실적인 정책으로 추진하려고 작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한반도 대운하 구상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7, 80년대의 토건사업을 21세기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발상은, 오버액션으로 인기를 만회하겠다는 이덕화의 연기 전략처럼 비현실적이다. 오버액션으로 치면 탤런트 출신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시대착오적인 과거 회귀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언론장악 정책일 것이다. 그는 KBS와 YTN을 장악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정연주 KBS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KBS 이사인 부산 동의대의 신태섭 교수를 해직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허기야 대학에 압력을 넣어 표적 징계를 한 것이라는 언론단체들의 주장에 ‘내가 시킨 것이 아니다’라고 발뺌하겠지만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방송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지지율 추락도 방송 탓으로 돌리고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도 방송의 허위보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촛불집회도 인터넷의 실황중계 방송 때문에 확산되었고, 조중동에 대한 광고 불매 운동도 인터넷 카페 탓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기에 검찰과 경찰, 세무서, 감사원 등 모든 공권력을 총동원해서 방송과 인터넷을 장악하고 통제하려고 나선 것이 아니겠는가.

후진기어 넣고 전진하려 가속페달을?

경북 안동의 한 대학교수는 운하반대 서명을 했다고 정보과 형사가 연구실을 찾아와 조사를 하고 압력을 가했다면서 5공 시절에도 정권 퇴진이 아니라 정책 반대를 한다고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고 개탄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준의 학원사찰은 일제강점기 때나 있었던 일”이다.

이쯤 되면 이명박 정부가 “후진기어를 넣고 전진하려고 아둥바둥 댄다”는 말이 실감으로 와 닿는다. 그런데 후진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너무 세게 밟은 탓에 10년이나 20년 전이 아니라 그 이전으로까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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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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