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문국현 현상의 확대 재생산으로 나타난 안철수 현상/정성태

시와 칼럼 2014. 4. 1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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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근래 우리 정치권에 최대 화두로 대두된 바 있는 안철수 현상의 배경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근거가 자리하고 있다. 기실 그 이전에 문국현 현상이 태동되기도 했으나 미완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를 논하기에 앞서 지난 15~18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투표율과 각 후보별 득표율을 살펴보는 것도 적잖이 유의미한 일이라 여긴다.


SNS 급속 보급과 전후 세대 감소 따른 개혁 지향성 증가

 

15대 대선 투표율의 최종 수치는 69.3%였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40.3%,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38.7%,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19.2%를 차지했다. 16대 대선 투표율은 70.8%를 보였다.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48.9%,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46.6%를 얻었다. 17대 대선 투표율은 63.1%로 역대 대통령 선거 가운데 가장 저조한 기록을 나타내며 마감됐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48.7%, 민주당 정영동 후보 26.1%, 무소속 이회창 후보 15.1%,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5.8%,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3%를 득표했다. 18대 대선 투표율은 75.8%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51.6%,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8%로 당락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를 보다 세심히 짚어 보자. 15대 대선은 김대중 후보가 보수 정객인 김종필 자민당 총재의 협력 그리고 이인제 후보가 보수표를 잠식하는 가운데 치룬 선거였음에도 아주 근소한 차이로 진보 진영이 승리하게 된다. 이 당시만해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성이 강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양자 대결로 치루어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승리를 거머쥔다. 보수 세력과의 연합도 없었다. 그렇다고 보수 후보가 선거에 나와서 상대 후보의 표를 잠식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 후보의 승리로 귀결됐다. 다자 구도로 펼쳐진 17대 대선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22% 이상 득표율 차이를 보이며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보수 정객인 이회창 후보가 15% 이상 득표했음을 감안할 때 이는 사실상 진보 진영의 몰락에 가까운 패퇴다.

진보 진영 후보군이었던 문국현, 권영길 후보의 합산 득표율 9% 가량을 정동영 후보가 그대로 흡수한다고 가정할지라도, 이는 이명박 후보와의 현격한 격차를 좁히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치다. 더욱이 보수 정객인 이회창 후보가 잠식한 득표율까지 감안한다면 진보 진영으로서는 처참한 결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18대 대선에서는 진보와 보수 세력 간의 맞대결로 펼쳐졌다. 결과는 비교적 근소한 차이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다. 이는 정부 조직이 대대적으로 개입된 관권 부정선거였음을 염두에 둘 때, 사실상 진보 진영의 승리로 해석할 수 있다. SNS 등의 급속한 보급, 그리고 전후 세대가 날로 줄면서 그만큼 우리 사회의 개혁성이 강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참여정부의 개혁 및 민생 기만에 대한 심판

여기서 거듭 17대 대선 결과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투표율이 역대 대통령 선거 가운데 가장 낮았는지, 아울러 사상 최악의 표차로 보수 진영 후보에게 패했는지, 그에 대한 진보 진영의 뼈를 깎는 자성이 요구된다. 이를 명확히 파악해서 현장 정치에 적극 반영할 수 있어야만, 향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승리를 가늠할 수 있겠기에 그렇다.

17대 대선 결과는 사실상 노무현 정권 5년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했다. 참여정부의 거듭되는 우향우 정책으로 인한 지지층의 거듭되는 이탈은 정권 말기 지지율이 한자릿수까지 떨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그러한 가운데 치루어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승리를 기대하기란 매우 난감한 전망이었다. 무엇보다도 실망한 주된 유권층이 적잖이 투표장을 찾지 않았던 점이 가장 큰 패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표심은 분풀이 성격의 역선택을 했을 개연성도 다분하다. 정당 충성도가 옅은 중도층의 민심 이반 또한 컸다. 어느 누가 후보로 나서도 승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말로는 개혁과 사회정의 그리고 서민을 외치면서도 정작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못한 측면이 강했다. 오히려 정책의 잦은 혼선과 오락가락으로 인해 우리사회의 건강한 미래상마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실제 참여정부 당시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통계를 작성한 이래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최대치를 기록했다. 성장률도 OECD 평균을 밑돌았으며, 수출마저 한 자릿수를 보였다. 내수경기 진작을 가늠할 수 있는 소비자 기대지수도 낮게 나타났으며, 기업의 투자의욕과 관련된 경기실사지수 또한 악화됐다. 여기에 각종 명목의 세금 인상은 근로자의 소득증가에 비해 무려 4배나 늘었다. 그렇다고 국민 일반에 대한 의료 및 서비스 질이 크게 개선된 것도 거의 없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가계의 소비지출은 더욱 줄게 되고 빈곤층의 고통 또한 가중되었다. 특수층 일부를 제외한 많은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맸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가구의 32% 가량이 적자 가구로 나타났다. 최하위 소득계층의 참혹한 생활상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능히 가늠할 수 있다.

기실 참여정부 태동과 함께 무섭게 전개된 대북정책 특검은 노무현 정권의 불운한 미래를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이에 더해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평균 3배 가량 오른 수도권 아파트값은 가히 충격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아파트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부자에게는 한없는 축복이었으나, 집없는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심각한 규모의 청년실업과 살인적 노동 정책은 사회 불안의 또 다른 축이었다. 가장 많은 노동자 구속, 가장 많은 노동자 해고, 가장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함으로서 내수 시장마저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미 FTA 추진, 철도민영화 1단계 완료, 의료사영화 추진, 대추리 살인진압, 부안 몽둥이 진압, 이라크 2차 파병, 인터넷 종량제 미수 등을 비롯해 숱한 우편향 정책은 곧장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대한 개혁 대중의 심각한 불신으로 귀착됐다. 개혁과 서민대중을 참칭하면서도 정작 실천에 있어서는 오히려 개혁을 능멸하고 또 서민 등골 뽑는 정책으로 일관됐다. 참여정부를 일컬어 인구 사이에서 삼성 공화국이란 비아냥으로 회자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듯 온갖 사이비 개혁놀이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다수 국민은 끝모를 절망 속으로 침몰했다. 폭발일로의 원성 또한 차곡차곡 쌓여 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집권당 정동영 후보의 입에서 나오는 그 어떤 말도 모두가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었다. 선거 전략 또한 민주와 반민주 식의 닳고 낡아빠진 구도로 몰고 갔으니 그저 세간의 비웃음만 불러 올 따름이었다. 도대체 그들과 저들이 어떻게 구별되며 또 무엇이 다른지 도통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권력 다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비춰졌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크고 작은 도덕적 하자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것은 어쩌면 당연시 읽히는 대목이다. 이후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제반 사정은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민주당 또한 이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기는커녕 오히려 끝모를 무기력증을 앓았다.


민주당의 우편향과 지지부진이 초래한 안철수 현상

문국현 현상이 정치권에 드러난 것도 실상 친노 세력에 대한 반동 심리였다. 그러나 이는 찻잔 속의 미풍으로 그치고 말았다. 비록 초라한 미완으로 끝났지만 민주당 또한 여전히 위기 상황이었다. 이에 친노 세력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상쇄할 요량으로 비노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인 김한길을 대표로 세웠으나, 그 또한 오히려 우편향을 더 강화했다. 정치 쇄신과 민주당의 정체성 확립을 이루기는커녕 매우 안일하게 대처했다. 그에 따른 지지층 이탈은 날로 하향 곡선을 그렸다. 그런 상태에서 안철수 현상이 본격 점화됐다. 그 여세를 몰아 안철수 후보가 지난 서울 노원을 재보선에서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이며 당선됐다. 급기야 아직 태동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 지지율이 40% 턱밑까지 차오르며 민주당을 2배 이상 앞섰다. 호남 지역에서는 거의 3배 가량 앞섰다.

그리고 그러한 기세는 한동안 지속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어느 순간부터 정무적 기능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날로 오른쪽 유권층을 의식하는 듯한 발언이 그것이다. 그와 함께 지지율도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서마저 양비론적 시각을 드러냄으로서 표심이 급격히 무너졌다. 새 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도 원인 가운데 하나다. 총론격인 새 정치는 있었으나, 각론에서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한데다, 정치적 발언 또한 우향우 행보를 지속하면서 차츰 지지층의 이탈로 나타났다.


새로운 안철수 현상 불러 올 개연성 크게 상존

그러나 여기서 함께 살펴야 할 점이 또 있다. 안철수 신당으로 몰렸던 야권 지지층의 이탈이 민주당으로 옮겨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새누리당으로 옮겨 갈리는 만무한 일이다. 이는 김한길 대표 체제의 민주당 또한 우향우 행보를 보이는 데 따른 거부감의 표출로 보는게 보다 타당하다. 그러다보니 민주당은 고작 10% 내외의 지지율을 보였고, 안철수 신당 또한 지지율이 반토막난 상태로 고착되고 말았다. 결국 위기에 봉착한 김한길 체제의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이 극적 통합을 발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 또한 아니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향후 정당 운영 및 운용 그리고 정치적 행보다. 두 세력의 통합이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을 끌어 안을 수 있는 좌표 설정 및 정치 쇄신 그리고 대정부 공략으로 이행되지 못한다면 또 다시 지지율 하락은 불을 보듯 훤한 이치다. 지금보다는 보다 왼쪽으로 의제 설정을 해야하며 또 여론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다시금 국민적 신뢰를 탄탄히 회복해 나가야 한다. 이를 굳이 중도 개혁 또는 온건 진보라고 해도 될 듯 싶다.

대선에서의 양자 대결은 결국 51:49의 싸움이다. 이명박 정권 5년과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행해진 공안정국과 반서민적 책동은 중도층의 민심 이반으로 이어질 것임이 너무도 자명하다. 따라서 우파 유권층을 의식한 관성적 중도 정치를 표방하는 것은 그리 적절치 못하다. 그렇다고 우파 유권층에게서 의미 있는 표를 얻을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개혁 성향의 전통적 유권층에게 좌절을 안기게 될 것이고, 이는 정치적 냉소로 이어질 개연성이 보다 높다.


야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확립해야

그렇다면 진보 진영의 지난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몰락과 안철수 그룹 및 민주당의 동반 쇠락에 대한 성찰을 통해 향후 나아가야 할 바를 시급히 재정립해야 한다. 야권의 주요 지지층이 기대하는 바, 그러한 열망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안철수 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선 지난 이명박 정권에 의해 자행된 부정선거를 밝히겠다는 확고한 의지다. 국정원을 비롯한 복수의 정부기관이 대대적으로 연루된 것이 이미 드러났다. 심지어 선관위가 개표 조작을 했다는 납득할만한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시선을 희석시키기 위해 선량한 개인을 간첩으로 조작해내는 국가권력의 만행이 자행되고 있다. 내란에 준하는 이러한 범죄를 용인하고서 국가 기강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아울러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되고 있는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 민영화 및 의료 사영화에 대한 사활을 건 제동이다. 특정된 소수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겠다는 발상 자체가 국가 권력의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덧붙여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추진 및 해외자원개발에 따른 막대한 국고 손실과 그에 따른 부정축재 혐의에 대한 사법적 단죄다. 이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부패의 사슬을 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출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요구되는 것이 특별수사청 설립이다. 국회의원, 장차관 및 2급 이상 공무원, 판사 및 검사, 군 장성 및 대령급 이상 장교, 지방자치 단체장 등에 대한 강력한 사정이 요구된다. 다만 이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가장 큰 관건이라 하겠다.

이와 함께 가치 지향적 미래 설계다. 국회 제출된 2011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슈퍼부자와 일반근로자(근로자 평균연봉 2510만 원 기준) 사이의 소득격차가 무려 860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귀족근로자와 일반근로자 사이의 격차도 269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종합소득자 상위 100명의 1인당 연평균소득이 215억 7382만 원으로, 이를 한 달 수입으로 산출하면 17억 9781만 원에 이른다. 또 근로소득 상위 100명의 1인당 연평균소득은 67억 4795억 원으로, 이는 매월 5억 6232만 원이 된다. 슈퍼소득 상위 100명의 한 달 소득이 일반근로자의 평생소득보다 월등히 많은 액수다. 근로소득 상위 100명의 한 달 소득 또한 일반근로자가 23년을 꼬박 일해야 받을 수 있는 액수에 해당된다. 실로 경악할만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표본 추출이 전체 근로자의 평균소득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니, 그 계층을 하위근로자로 산정했을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수치를 보이게 된다. 아울러 슈퍼부자의 탈루소득까지 합산할 수 있다면 그 격차는 상상에 맡길 일이다. 한편 2012년 통계를 보면,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슈퍼부자와 고소득근로자의 수입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그에 반해 하위 소득자의 수입은 더욱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감안할 때, 현재는 더 큰 격차가 발생하고 있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사채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국민 1인당 2.000만 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연평균 소득과 맞먹는 수치로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 가운데 주택 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 가까이에 이른다. 여기에는 투자적 목적으로 인해 발생한 경우도 있겠으나, 실질적 '하우스 푸어'가 다수 해당된다. 향후 인구 감소와 함께 주택 가격의 하락은 피할 수 없음을 고려할 때 그 심각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머지 600조 원 이상의 채무자 또한 생계형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놓여 있다.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의 고리에 놓여 있으며, 원금은커녕 이자 변제만 하기에도 급급한 경우가 대다수다. 실질적으로 파산 상태나 매양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직장인의 월 평균 소득이 200만 원을 다소 상회한다. 도시 가구 3~4인 가족이 한 달 생계를 꾸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의식주, 각종 공공요금, 통신 및 교통비, 교육비와 병원비 등을 조달하기에도 턱없이 벅차다. 날로 가파르게 인상되고 있는 전세금 충당 및 월세를 감당해야 한다. 여기서 자영업자가 처한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자칫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우리 사회 전체의 시한폭탄으로 작동될 개연성을 크게 안고 있다. 죽도록 일을 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밝은 장래가 담보될 수 없다.

이를 방증하는 사회 현상 가운데 하나가, 날로 결혼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늘고 있다. 설혹 결혼을 해도 출산 기피 현상이 뚜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한 인구 감소세와 맞물려 노령화 진행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미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는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물론 일부의 경우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구속되기 싫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요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 주거 비용에 따른 압박감, 막대한 교육비 및 의료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도 모자라 자신의 노후 준비만도 벅차게 여기는 사람이 전체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되고 있다. 피땀 흘려 성실히 살아도, 자기 자신의 노후마저 불안정한 이들이 자식을 낳아서 양육하겠다는 꿈조차 차단 당한 사회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는 65세 노인 빈곤률과 자살률이 OECD 34개국 가운데 최악의 수준으로 OECD 평균 4배에 육박하고 있다. 전체 빈곤률도 2012년 7위에 이어 2013년에는 6위를 기록했다. 날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고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한다.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골병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현주소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고소득자에 대한 세제 개편을 보다 혁신적으로 꾸릴 필요성이 있다. 조세 포탈을 근원적으로 방어할 제도적 보완책도 마련돼야 한다. 해외 재산 도피 또한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예산 용처의 투명성 또한 재고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의 불필요한 사업에 소요되는 예산은 과감히 철회해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해, 잘 나가는 곳에서는 세금을 더 걷고, 낭비적 예산은 줄이자는 것이다. 이런 바탕 하에서 일반인에 대한 십시입반 성격의 세제 개편이 이루어져야 누구라도 납득하게 되고 또 저항없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지속 가능한 형태의 복지확충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좋은 일자리 창출도 시급한 과제다. 대기업에 의존하던 기존 정책으로는 이미 임계치를 넘어 섰다. 전체 취업률에서 대기업이 담당하고 있는 영역은 고작 5% 이하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건실한 중견 기업의 대대적 육성을 통해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지나친 노동 시간으로 인해 오히려 생산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동 시간을 단축해 기존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도 적극 검도돼야 한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 문제도 완화해야 하며 차별 또한 철폐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 전반적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일정 부분 내려 놓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우선적으로 방대한 공기업과 공공 투자기관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토대로 같은 사업장 내에서의 지나친 임금 편차 철폐와 돈잔치 행태를 엄단해야 한다. 여기서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정치권 스스로가 과도한 기득권을 내려 놓겠다는 자기 희생적 자세다. 선행적 모범을 통해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분배정의와 조세개혁을 통한 복지확충은 결코 없는 자의 괜한 투정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안정과 미래에 대한 합리적 투자다. 국방만큼이나 중요한, 즉 국가안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사안인 것이다. 계층과 지역간의 극심한 편차로 인한 사회불안이 가중될수록 그에 따른 비용손해는 오히려 더 크게 전가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많이 가진 자, 특히 재벌권력의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를 제도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정치권력의 적극적 개입 없이는 국가발전의 동력 또한 멈출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맺으며

서민대중의 고난에 찬 피눈물에 뜨거운 심정으로 동참하고 그에 대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야권으로 거듭나야 한다. 죽을 각오로 임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사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임을 야권은 깊이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차제에 소득 상한제 및 단위 사업장 내에서의 소득격차 상한제에 대한 공청회도 살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위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특별수사청 설립에 대해서도 안이 마련될 수 있기를 또한 기대한다. 특별히 진보적 혹은 개혁적 유권층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숭고한 피의 역사다. 아울러 6.15 선언, 10.4 선언 또한 남북의 공생공존과 평화적 통일을 이루어가기 위한 역사의 위대한 이정표다. 그러한 시대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안목 또한 함께 요구된다. 계승 발전시켜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유산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왜곡하거나 또는 오도하려는 것은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점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군은 결코 재벌과 부자 또는 독재 세력이 아니다. 서민과 중산층이며 민주주의 세력이다. 이를 위한 의제 선점을 통해 적극적으로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가운데 정국을 이끌어야 한다. 거기 승리를 향한 기반 또한 조성될 수 있는 까닭이다.

 

시인 정성태 

* 월간 '글돌' 창간호 커버스토리에 함께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 http://www.letterstone.net/bbs/board.php?bo_table=B33&wr_id=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