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정성태

시와 칼럼 2014. 4. 8. 04:08
728x90

박정희, 1917년 경북 선산 출신이다. 대구 사범학교 졸업과 함께 문경 보통학교 교사로 3년 동안 재직한다. 일제 감점기에서 자신의 출세를 위한 방편으로 일본이 세운 만주 군관학교(만주 신경군관학교)에 자원 입교해 2기생으로 졸업한다. 일본 육사에 편입하여 졸업한 후, 일본의 관동군 장교로 임관돼 항일 세력을 진압하는 숱한 전투에 참가한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귀국, 육사 졸업을 거쳐 육군 장교로 임관된다. 군부의 비밀 조직이던 남로당원으로 활동하다 발각돼 사형이 언도된다. 그러자 동료 남로당원들의 명부를 밀고하고 그 대가로 무기징역으로 감형, 이후 15년으로 재감형된다. 만구 군관학교 시절 친일파 동료들의 도움에 의해 석방되어 육군본부에서 문관으로 복무한다.

한국 전쟁 발발과 함께 소령으로 재임관되었으며, 1953년 준장으로 진급한다. 이후 미국 육군포병학교 고등군사학교에서 고등군사훈련을 받은 후, 육군 요직을 두루 거치며 1958년 소장으로 진급한다. 1960년 제 2군 부사령관으로 전보되었으며, 이듬 해인 1961년 5월 16일을 기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 찬탈에 성공한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1962년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실질적인 최고 권력을 행사하며 1963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다. 같은 해, 관권 부정선거로 윤보선을 15만 표 차이로 제치고 대통령에 취임한다. 1969년 장기 집권을 위한 3선 개헌을 통과시킨다. 1972년 유신헌법을 제정, 국회와 정당을 해산시키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로서 영구 집권의 발판을 마련한다.

자신의 정적에 대한 끔찍한 고문과 무차별적 탄압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적잖은 의문사를 비롯해 걸핏하면 간첩으로 몰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심지어 사형 언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형을 집행함으로서 스스로 사악한 재판임을 자인한 꼴이 되기도 했다.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지식인, 학생 등 그 피해자가 숱하다.

그러나 피는 피를 부른다고 했던가. 일단의 참모들과 함께 기생 파티를 즐기던 도중,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사망한다. 이 때가 1979년 10월이니, 무려 18년 5개월을 무지막지한 공포 정치로 몰고 간 셈이다. 그와 함께 유신 독재도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죽어간 억울한 원혼들의 호곡이 여전히 잠들지 못한 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보통학교 교사, 일본군 장교, 항일 독립세력 사살, 육군 장교, 남로당원, 밀고, 북한과의 전투, 군사 쿠데타, 부정 선거, 헌법 유린, 반공주의, 철권 독재 등으로 점철된 박정희의 궤적. 오직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살아 온 참으로 변화무쌍한 삶이다. 그런 탓에 일부 몰지각한 이들에 의해 반신반인의 반열에 오른 것일까?
그 맹목성 앞에 아연 말문을 닫게 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