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인간은 욕망을 욕망하는 나약한 존재/정성태

시와 칼럼 2017. 1. 3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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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가난에 내몰리고 있다. 특히 경제 대국을 자임하는 국가들 또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 개별 국가에 물질 혹은 돈이 없어서 민중의 삶이 가난한 것은 아니다. 특정 소수에 의한 부의 편중이 개별 국가도 그렇거니와 인류 공동체를 위협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고 있다. 불평등의 극심한 심화다. 응당 그로 인한 반동적 기류 또한 넘치도록 내재되어 있다. 한국 사회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이를테면 좌파적 인식의 보편화 현상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척박한 삶에 갇혀 허둥대고 있다.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은 중첩된다. 미래는 고사하고 당장의 생계 유지만도 버거운 현실이다. 청춘을 바쳐 일했건만 노후는 그보다 더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문명이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악순환은 여전하다. 참정권이 보장되어 있건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개선해내지 못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러한 근본적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희망 고문 때문이다. 특정 정치인 또는 그러한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되면 변화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심리에서 기인한다. 그야말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안이함이고 자기 안주다. 세계사를 통틀어 그러한 예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질곡으로 끝난 경우가 허다하다. 쟈코뱅 정권의 몰락이 그렇고 노무현 정권의 몰락 또한 비슷한 연장선에 놓여 있다.

 

해법은 무엇일까? 바로 시스템을 교체하는 것이다. 아울러 참정권의 확대다. 현행 민주주의 체제를 보다 심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특정 정치인 또는 어떤 권력의 선의에 의지하려는 자세야말로 지극히 수동적 환상에 불과하다. 심하게 말하면 노예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보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단순히 선거철에 투표만 한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인간은 본디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특히 정치 권력은 더욱 그러하다. 정치인을 종교적 영역의 성자로 여겨서는 낭패를 겪게 된다. 심지어 종교마저 정치 영역 못지 않게 퇴락한 수탈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망각하면 역사 발전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특정 정치인을 위해 울지 말고 바로 자신의 오늘과 내일을 위한 행동이 수반될 수 있을 때 손에 잡히는 변화가 구현된다.

 

박근혜 정권 이후 또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권력의 독과점 현상은 그대로 노정될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다소 있을지언정 본질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극히 어렵다. 따라서 정치 권력이 누구에게 향할 것이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천착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 인간적 삶의 척도가 귀결될 수 있기에 그렇다. 즉, 정치 권력을 국민 앞에 보다 가깝게 무릎 꿇릴 수 있는 방안이다. 바로 시스템 교체만이 국민 일반을 스스로 구할 수 있음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