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정성태 자화상 내게 푸르기만 하던 소년의 때, 기름진 대지와 나지막한 산이 있었네. 언제라도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 집에선 아침과 저녁이 되면 굴뚝 위로 연기가 올랐네. 자비로우나 엄하기도 했던 병든 아버지와 새끼손가락 같은 동생들도 함께 있었네. 거기 앵두와 무화과가 익어가고 담장 .. 정성태 [시 집] 2012.08.21
생의 이름을 걸고/정성태 생의 이름을 걸고 생의 이름을 걸고 내 사랑의 향배를 묻고 싶다. 기품 있는 한 송이 그 꽃이 내게 주는 무수한 언어에 채널을 맞춘 채 지상의 모든 사랑과 그 빛나는 맹세보다 더 굳은 내 고독한 죄를 용서 받고 싶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 집] 2012.08.17
향수/정성태 향수 나 가노라면 이 길 끝 바람 불어 시원한 유년의 호숫가에 이르리 산새들 한가한 저녁 초록 물결이 곱고 소박한 들꽃의 나들이 달빛에 젖는 그곳으로 나는 가리 반딧불 악보 그린 뒷동산 오선지 따라 꿈 같은 세월을 묻으리. 詩 정성태 정성태 [시 집] 2012.08.11
노란 모닥불/정성태 노란 모닥불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하늘을 맹세코 아니라고 한낱, 모닥불을 얻어 쬐고자 더 큰 추위로 꽁꽁 마음문을 걸어 잠궜다. 새벽, 닭이 울고 나면 기어이 따라 울 하루에도 몇 번씩 노란 모닥불을 그렸다. 노오란 그 때 베드로의 모닥불을. 詩 정성태 정성태 [시 집] 2012.07.29
그와 나누는 동거/정성태 그와 나누는 동거 어제 저녁 무렵 내 좁은 욕실 어딘가에 틀어박힌 채 자정이 넘도록 소리를 내고 있는 녀석. 혼자 사는 내게 소통되지 않는 대화를 건네는 것도 같고 때론 내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것도 같다. 5년여를 꼬박 땅속에 갇혀 지내다 무슨 인연이 깊은 것이기에 지상의 짧은 삶.. 정성태 [시 집] 2012.07.26
바다/정성태 바다 지성의 전진은 폭풍의 노동과 함께 상실되고 너는 만족하지 않는 질문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마치 단절과 규제를 모르는 듯 이제 저녁 놀이 적막하다 그리고 네 기묘한 알몸도 금빛으로 한가롭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에로티시즘, 그 잔혹한 공포로부터 내 고행의 악마적 반복.. 정성태 [시 집] 2012.07.16
기방 여인네의 뒷모습에 비친 사랑/정성태 기방 여인네의 뒷모습에 비친 사랑 어느 댁 나들이를 갔더니 거문고를 안고 가는 조선시대 기방 여인네의 뒷모습이 쓸쓸한 풍경으로 눈에 띈다. 우리네 삶의 종착을 보는 것만 같아 한 동안 말을 잊고 깊은 생각에 함몰된 채 나왔다. 결국 사람 사는 동네의 목숨을 버릴 듯 열망하던 그 뜨.. 정성태 [시 집] 2012.07.14
인연/정성태 인연 비록 길이 멀다하나 사랑은 운명과도 같아 거기 빛나게 서 있나니 주어진 인연이라면 설혹 약속이 없을지라도 더불어 와야 할 때를 안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 집] 2012.07.10
사랑한다면/정성태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다면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보고 싶은 마음을 지녔다면 보고 싶다고 말하십시오. 사랑과 그리움에 무슨 셈법이 필요하겠으며 또 거기 자존심이 깃들겠는지요. 우리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할 존재입니다. 서로 등 기대어 나눌 마중물.. 정성태 [시 집] 2012.07.09
상실의 늪/정성태 상실의 늪 몇 개의 후비진 골목을 지나 꿈이 질식한 검은 불빛이 쓰러지고 창백하게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은 정신병동으로 실려 나갈 몇 개의 절차만 남겨 놓은 채 디오니소스! 당신의 구원을 바라는 뼈마디에선 광이 나고 그래서 더욱 후비진 긴 꼬리표를 어루만지며 춤을 춰요 골수에서 .. 정성태 [시 집] 2012.07.04
변방에서/정성태 변방에서 시리다, 마음자락 행간에 스미며 서걱대는 갈바람 소리. 날은 차갑게 저물고 갈잎은 떨어져 지는데 한밤에 생각나는 너와 나누던 살갗의 그리움, 사랑은 그리 허무한 추억이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 집] 2012.07.03
고독하다는 건/정성태 고독하다는 건 억겁에 다다를 듯 허망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고독하다는 건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확신없는 것들과 그 생각들이 분해되며 거기 암묵적으로 시간을 소진하는 진실은 또 얼마나 옹색하고 구차한 일이던가. 숨 가쁘게 이글거리는 허욕의 불꽃을 다스리며 고독하다는 건 .. 정성태 [시 집] 2012.06.23
진국을 얻기 위해선/정성태 진국을 얻기 위해선 진국을 얻기 위해선 솥에 사골을 넣고 물을 충분히 부어야 한다 불꽃을 지펴 골수가 흘러 나올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진국을 얻기 위해선. 詩 정성태 정성태 [시 집] 2012.06.20
무의식/정성태 무의식 나는 파도를 마시기 위해 꿈틀거리는 뱃전에 앉았다. 붉은 철쭉보다 짙은 그것은 내 시원에 근거를 둔 가장 깨끗한 분노를 다스리며 저기 저 구멍이 뚫린 그 명징한 한 개의 섬으로 연거푸 발길을 내딛어야 하는 내 의지의 수도 없는 목청이 오늘도 거침없이 파도를 삼킨다. 詩 정.. 정성태 [시 집] 2012.06.12
어느 훗날/정성태 어느 훗날 어느 훗날 막막히 갈 곳 모르던 때 밝히 내 사랑이 머무리. 일상적이나 한결 같았던 그 내면의 깊음 위에 깨우쳐 아득한 슬픔도 있으리. 거기 옛 그림자 그대 어둔 가슴에 하나 둘 지울 길 없는 별이 되어 흐르고 망망히 돌이킬 수 없는 나 또한 숨 죽여 울고 가리니...... 詩 정성.. 정성태 [시 집] 2012.06.10